미국 민주당의 대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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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미국 민주당하원 의원총회가 채택한 정책지침서 『변화를 위한 선택-민주당의 미래상』은 우리에게 상반된 두 개의 판단을 동시에 내리게 한다.
이 정책지침서가 밝힌 정세판단과 사실인식에 우리는 전적으로 견해를 같이 한다.
미국 민주당의 하원의원들은 한반도엔 아직도 분쟁 가능성이 잠재해 있고 한국이 경제력에선 북한에 앞서 있으나 군사력에선 뒤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또 한국의 방위가 미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일본의 이익에도 사활적(Vital)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이 자체 자원을 더 많이 방위노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한국에 경제지원을 제공할 것』을 포함하여 서 태평양 해역안보에 더 많은 몫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한반도의 잠재적 위기론과 서 태평양 방위에서의 일본의 역할 증대론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것과 일치된다.
그러나 민주당 정책지침서가 제시한 미일의 한반도 지원정책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책지침서는 장·단기 두 단계 대한 지원방안을 열거했다.
단기적으로는 주한 미 지상군의 규모를 축소하여 전술해·공군 및 병참 지원으로 대체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한국 지원을 전반적으로 줄여 나가면서 그 역할을 일본이 맡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GNP 6%를 들여 힘겨운 방위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방위에 의한 최대의 수혜 외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과 일본이다.
우리의 국방노력은 미국의 세계정책과 서 태평양 군사전력의 불가결한 일부분이다. 우리는 또 일본국방의 전방요새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그 영향력과 국익을 유지하고 일본이 오늘의 안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피땀어린 국방노력에 힘입고 있다.
그 같은 수혜국들이 우리의 방위노력을 지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 땅에서 지상군을 축소, 철수하는 것은 이미 두 차례의 경험을 통해 그 부당성이 입증됐다. 「트루먼」행정부가 1948년 미국 진주군을 칠수시킨 뒤 2년만에 6·25가 났다. 지난 77년 「카터」행정부도 데탕트를 이유로 주한 지상군읕 철수시키려다 그 불가함을 알고 뒤늦게 중단했다.
이 두 개의 시행착오가 모두 민주당 정부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런 민주당의 하원의원들이 다시 똑같은 과오를 범하려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 국방의 일본 대항론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이 지역의 긴장을 악화시킬 뿐이다.
군사방위란 경제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월남전 실패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의 고전이 그 증거다.
한국을 포함한 동남북아시아 국가들에서 일본이 저지른 회복키 어려운 과거를 미국 민주당은 모를 리 없다.
미 지상군의 현지 주둔과 상호방위조약을 기축으로 하는 오늘의 아시아 방위구조는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형태다.
다만 미국과 현지 국가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큰 반면 경제대국일본은 그 수혜의 정도나 경제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방위비는 GNP 1%미만이다.
따라서 미군을 현상대로 유지하면서 일본의 경제적 출자를 늘려 지역방위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미국과 현지 모든 국가들에 다같이 균형된 이익과 안전을 제공하는 최선의 길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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