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혹시 주치醫 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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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목이 답답하고 침이 마르는 증세로 고생하던 가정주부 K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K씨는 최근 한 종합병원의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환자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무엇인가 물어보려 하면 귀찮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막았다. 진찰은 몇분 만에 끝났다. 병명은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처방전에 빽빽하게 적힌 각종 검사와 약값을 위해 K씨가 낸 돈은 40여만원이나 됐다. 그러나 그의 목은 여전히 불편했다.

K씨에게 처방된 약은 골다공증 치료제로 한알에 1만원이 넘는 고가의 신약이었다. 그러나 골밀도 검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골다공증이 있는지 알고 약부터 처방한단 말인가. 게다가 골다공증은 K씨가 호소했던 증세와는 무관하지 않은가. 갑상선 검사도 납득하기 어렵다. 환자의 증세는 갑상선 질환과 연관이 없을뿐더러 의사는 갑상선이 부어 있는지 환자의 목을 한번도 만져보지 않고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갑상선 스캔검사 처방을 냈다. 말이 진찰이지 진료수익을 위해 투망식 검사를 총동원한 전형적인 과잉진료라 할 수 있다.

K씨는 결국 동네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목 안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간단한 검사를 받고 '신경성 인두'란 진단을 받았다. 인두 주위의 신경이 일시적으로 과민해져 나타나는 병으로 중년여성에게 흔하다. 그는 의사의 설명과 함께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씻은 듯이 좋아졌다. K씨가 낸 돈은 약값을 포함해 고작 8천원이었다.

독자 여러분은 혹시 몸이 아플 때 K씨와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가. 과잉진료는 의료 소비자인 환자의 숙명적 고민거리다. 의료 문외한인 환자는 의사가 비양심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질병을 침소봉대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잉진료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방법이 정부의 권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의사의 처방 내역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검사나 치료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비보험 검사나 치료에 대해선 통제할 수단이 없다. 감시 자체에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다. 현재 건강보험 관련 인력만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나 되며 인건비 등 이들 기관의 운영 경비만 한해 1조원이 넘는다. 객관적이며 공정한 감시체계도 미흡해 요령있는 악덕 의사는 쉽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반면 선량한 의사는 넘쳐나는 심사관련 서류 일로 날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자는 제도적 감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환자와 의사간 신뢰 회복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이 가정마다 주치의를 갖자는 것이다. 재벌이나 정치 권력자만 주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자주 찾아가 건강 문제를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의사면 충분하다. 금전적 거래나 임명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동네의원 중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의사를 주치의로 삼으면 된다. 과거처럼 의사 만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한의사와 치과의사까지 합치면 해마다 5천여 명의 의사들이 동네 곳곳에서 개원하고 있다.

주치의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단순한 건강 궁금증의 해결에서부터 큰 수술까지 최소 비용으로 최대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병은 주치의가 직접 치료하고 큰 병은 주치의가 소개한 병원 의사를 찾으면 된다.

다만 여기엔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 진찰과 처방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의사의 무형적 서비스에 대한 인색한 평가다. 현재 진찰료와 처방료를 합쳐 모두 3천원의 본인부담금을 낸다. 65세 이상 노인은 1천5백원이다. 의사와 30분을 상담하든, 1시간을 진찰받든 똑같다. 주치의 제도의 정착을 통해 과잉진료와 의료불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진찰료와 처방료의 현실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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