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경성 <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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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가 화가 이중섭을 처음 만난 것은 1940년께 동경우에노에 있는 미술관에서 개최한 전람회에서 였다. 하도 오래돼서 그 전람회의 정확한 명칭 등은 잃어버렸는데 나중에 그것이 미술창작가 협회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아침 일찌기 전시장에 동향의 친구 조규봉과 갔었는데 그때 그곳에서 조규봉의 소개로 만난 것이 이중섭이었다.
그는 작품 『소와 소녀』『불상』등을 출품했는데 첫 대면이었지만 그림에 대하여 꽤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후 같은 동경에 있으면서 여러번 공적인 장소, 즉 전람회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으나 사적으로 자리를 같이한 적은 없었다.
그러자 46년 봄 마침 필자가 인천 자유공원에다가 창설한 인천시립박물관에 이중섭·김만형등 몇몇 화우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46년4월1일에 개관한터라 이중섭이 그곳에 온것은 개관직후였다. 인천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서 있는 인천시립박물관도 꽤 좋은 곳이어서 오는 사람마다 칭찬하는 장소다. 우리들은 푸르게 물드는 정원 잔디위에 앉아 동경에서 만난 이후의 생활보고며, 여러가지 정담을 나누었다. 그때 이중섭은 45년10월1일부터 덕수궁에서 개최된 해방기념전을 계기로 서울에 왔으나 시간이 늦어 작품을 출품치 못하고 그럭저럭 서울의 친구를 만나면서 그때까지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중섭과 내가 세번째로 만난 것은 51년 부산광복동에 있는 녹원다방에서였다. 그것은 문총주최로 3·1절기념미술전람회를 광복동일대의 7개 다방을 회장으로 해 개최했는데 이중섭의 작품은 광복동 파출소 뒤에 있는 녹원다방에 전시되었었다. 그 그림은 옆으로 긴 약 10호 정도의 소품으로 「도원경」을 주제로한 그림이다. 여러번 그 다방에 들렀다가 어느날 역시 다방에 들른 이중섭과 만나 46년이후의 재회와 전쟁의 고초를 이야기로 삼아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 때에는 수화 김환기도 자리를 같이 해 수화가 나보고 전람회 평을 서울신문에 실리도록 원고를 부탁하기도 했다. 60장 가까운 긴 원고여서 일간신문으로는 드물게 세번에 걸쳐 연재했다. 그때 글 끝에 「필자는 미술평론가」라고 하여 신문사 발령에 의한 미술평론가가 된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이중섭과 네번째로 만난 것은 55년 미도파화랑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였을 때였다. 이때는 홍익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터라 지금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흰소』그림을 홍익대에서 사게끔 교섭을 하고 작품 선정을 했던 것이다.
하루종일 전람회를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느라 긴 시간은 못냈지만 백화점 다방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여러번 잡담할 기회를 가졌었다.
마지막이 된 여섯번째 이중섭과의 만남은 56년께 어느 여름날 저녁 낙원동에서였다. 낙원동 김순배형의 집에서 만났는데 우리들은 거리로 나와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때 이중섭은 몹시 초조하고 생활의 난조에서 오는 피로가 겹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후 나는 단 한번도 이중섭을 못 만나고 소문에 대구에 내려갔다, 삼선교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등의 풍문만 들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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