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메시지’에 1000억 내놓은 한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자금을 넣으면 선주, 항만 하역업체 등 해외 채권자가 다 빼간다. 이것이 한진해운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없는 큰 이유다.”

박 대통령 수행 중인 유일호
“물류 운송 대주주 책임져야”
여권 “대통령 생각으로 안다”

지난달 30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한진해운에 대해 추가 지원 불가를 선언하며 밝힌 배경이다. 한진해운 측이 내놓은 자구안이 기대치에 못 미치기도 했지만 정책금융회사의 돈으로 ‘해외 외상값’을 갚아 줄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진해운은 다음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일주일 후인 6일. 정부는 새누리당과 당정협의 뒤 한진해운에 1000억원 이상의 담보대출을 해 주겠다고 나섰다. 해외 항만에서 입항을 거부당하거나, 압류돼 오도 가도 못하는 한진해운의 선박이 늘면서 물류 대란의 파장이 커지자 결국 긴급 자금을 대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돈의 귀착지는 해외 항만업자, 하역업체 등 해외 채권자들이다.


▶ 추천기사 천연이라더니···샴푸 사용 후 대머리된 소녀



이날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도 1000억원을 조달해 한진해운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400억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마련한다. 600억원은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빌려주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보유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과 대여금 채권을 담보로 잡는다. 한진해운이 성의를 보임으로써 정부로서는 ‘체면’은 지킨 셈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위시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이미 법정관리를 택한 기업의 대주주에게 사재 출연을 압박하는 어색한 상황을 연출했다.

정부가 다급한 모습을 보이니 한진 측은 ‘딜’을 시도하기도 했다. 차라리 법정관리 신청 전 이미 퇴짜를 맞았던 자구안을 다시 받아달라는 얘기였다.


▶관련기사
① 물류대란 급한 불은 껐지만…“최소 2000억 더 필요”
[단독] 국가비상 때 쓸 컨테이너선 총 22척 중 12척이 한진해운
③ 법정관리 들어간 기업에 “돈 내놔라” …이상한 구조조정



결국 청와대까지 나섰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 중인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5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선적된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책임은 화주와 계약을 맺은 한진해운에 있다 ”며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유 부총리가 기자들을 만나기 전 박 대통령에게 이런 방침을 보고했다”면서 “조 회장의 사재 출연을 포함해 그룹 차원에서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민근·이태경 기자 jm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