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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최은희 부부 미 공개 증언 독점연재 WP지 회견|"김정일 개인금광 있으니 돈걱정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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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3월 북한을 극적으로 탈출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미국에 건너간 뒤 두 차례에 걸쳐 워싱턴포스트지와 회견을 갖고 탈출동기와 경위 등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본사는 이들이 행한 9시간30분간에 걸친 증언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 전체를 긴급 입수, 이들이 밝힌 북한 고발 내용 중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부분을 발췌, 독점 전재한다. 집필은 워싱턴포스트지의 안재훈 기자(안 커뮤니게이션즈 대표)가 맡았다.
5월15일의 첫 회견에 이어 두 번째로 신상옥·최은희 두 사람을 만난 것은 6월10일 워싱턴 근교의 한 개인 집에서였다. 한 달 동안 그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약간 긴장한 듯 했던 첫 모습에 비해 두 사람은 훨씬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기자와의 대화에 임했다.
영어단어도 가끔 섞어 쓰고 북한 실상의 어처구니없는 측면을 이야기할 때는 구김살 없이 활짝 웃기도 했다.
첫 회견 때는 미국정부측 경호원이 4시간 반 동안의 오랜 대화 중 줄곧 문밖에서 지켜 섰었지만 두 번째는 그들을 차로 태워다 주고는 돌아가 버렸다. 그들은 회견이 끝났을 때 다시 와서 두 사람을 어디론가 태워 갔다.
신씨는 요즘 8년 동안의 북한억류생활을 담은 수기를 쓰며 소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제는『신 걸리버 여행기』로 잡고 있다며 그는 웃었다.
그는 앞으로 나치전범으로 감옥에 있는「헤스」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이 두 사람과는 첫 번째 4시간 반, 두 번째 5시간, 합쳐서 9시간 반을 만나 이들이 납치 당한 과정부터 탈출에 이르기까지의 현실보다 드라마틱한 체험을 들었다. 한 국무성 관리는 이들이 미국기관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거짓말 탐지기 시험을 거쳤으며 매번 이에 통과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혹은 더 커져>
신·최 부부의 북한체험담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느 탐방기보다도 더 참담한 북한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장장 9시간30분에 걸친 이들의 회견내용중 미 공개부분을 간추려 소개한다.
-이번에는 북한에서 실제로 체험한 이야기를 해주기 바랍니다.
▲신상옥=북한에서는 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행정부는 허수아비라고 봐야 해요. 행정부는 완전히 심부름꾼이지 행정부 스스로 하는 일은 없다고 봐야지요.
-북한과 남한을 비교한다면?
▲신=북한은 생활·문화의 정도가 너무 떨어져 있어요. 특히 경공업부문이 그래요.
▲최은희=이북은 공공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한다며 독재를 하고 있지 않아요? 정치에 대해서는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입 막고 귀 막고 완전 독재를 한단 말예요.
-8년 동안 살면서 김일성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 한번이라도 들은 적 있습니까?
▲신=옥중에서 들었어요. 한번은 내가 갇혀 있는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사람이 지나가면서『김일성이「개새끼」』라고 하는걸 들었어요. 아마 죽으러 가는 사람 같았어요. 김일성이 욕을 죽을 각오 없이는 못합니다.
-김일성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느꼈습니까?
▲신=예상보다는 늙었다고 느꼈어요. TV나 신문에 나는 사진을 보면 그처럼 늙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데 막상 만나 보니까 상당히 늙었어요.
▲최=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걸음걸이도 뒤척뒤척해요. 84년 정월 초하룻날 만났지요.
-왜 만나자고 했을까요?
▲신=김일성은 상당히 우리를 만나고 싶어했는데 김정일이가 못 만나게 했어요. 김정일은 자기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외에는 자기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김일성을 만난 것은 우리가 신임을 받았다는 표시지요.
▲최=이북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는 것은 로마 교황 만나는 이상으로 어려워요. 우선 주변에서 김부자를 만난 우리까지 우러러본단 말예요.

<김일성 아내는 50대>
-어디서 만났습니까?
▲최=「주석 부」라는 곳이지요.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주석궁」이라고 부르지요. 그 안에는 1천명 가까운 사람이 모여 연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요. 나라에 비해 너무 커요. 백악관이 큰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거기보다 작은 것 같아요.
그 안에 들어가면 분수가 있고 극장 만한 홀이 있어요 아래층 양쪽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2층으로 올라 다니게 되어 있어요. 2층에 연회 홀이 있습니다. 신년사도 그 홀에서 읽어요.
-김일성이가 두분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나 요? 납치 당한 것 아는 것 같아요?
▲최=내가 느낀 것은 김정일이가 납치를 해 놓고 사후에 자기아버지한테『이런 큰 일을 했다』고 자랑하며 보고한 것 같아요. 김정일이는 내 사진을 여러 가지 찍어 가지고 자기 아버지한테 보였다고 그 러 데요.
-김일성 이야기 많이 들었을 테니 처음 만날 때 무섭지 않았습니까?
▲신=아니, 호의로 만나 주는 것이니까 무서울 것은 없었고….
그런데 그 사람 만나니까 벌써 우리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더란 말이 예요. 영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더군요.
-김일성 부인은 젊어 보여요?
▲신=젊은 정도가 아니지요. (최씨를 돌아보며)한 20년 젊지 않아요?
▲최=한 50대니까…그렇지요. 내 옆에 부인이 앉고 이 양반(신씨)이 저쪽에 앉아서 주로 나하고 이야기했어요. 주로 자기 남편(김일성)이 무슨 영화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하더군요. 그는 김일성이 역사물을 좋아한다고, 그런 영화 많이 만들어 달라더군요.
-김일성 만나기 전에 주변에서 만나면 이래저래 하라고 주의 주는 사람 없습디까?
▲신=(웃으며) 우리한테는 그런일 없었어요.
▲최=왜, 있었지요. 잘 못 들으니까 크게 이야기하라고….
-보청기 씁디까?
▲신=안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없었어요.
-목뒤에 큰 혹이 달렸다는 데 봤습니까?
▲최=예, 봤어요. 그 후에 보니까 처음보다 많이 커진 것 같아요. 요즘은 때때로 사진에도 나오게 찍더라고요.

<「빈」에도 전용은행>
-김정일의 인상은 어떠했습니까?
▲최=그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자기가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야 마는 그런 성격인 것 같아요.
-주위사람들이 김정일 대하는 건 어떤가요?
▲최=절대적이죠. 김일성이 대하듯 그렇게… 우리도 후에 말들었지요. 익숙지 않아서… 말을 할 때는 이쪽에서 꼭 일어나서 대답해야 해요, 우습다고요.
-만사를 흑백으로만 보고 중간으로는 보지 못하는 사람인가요?
▲신=민주사회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심사숙고해서『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세상을 보는 여유가 없어요.
▲최=세상 보는 눈이 그만큼 좁지요.
-똑똑한 가요?
▲신=지식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고 동구에도 못 가본 사람이 예요. 모두 영화를 통해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영화 필름을 많이 갖고 있지요.
-그는 소련교육을 받지 않았는가 요?
▲신=그건 옛날 일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시야가 넓어져야겠다고 생각해서 김일성이 집권하고 있을 때 자꾸 외국에 나가라고…나중에는 못나 간다고 여러 번 말했지요.
▲최=그건 우리 이야기고. 사실은 김정일이가 지금도 다 하기 때문에 외국 여행할 수 없어요. 김일성이는 간판이 예요. 본인도「내가 왜 옛날 구라파 일대를 다니지 않았나」하고 후회한다고 들었어요.
-김정일의 가정생활을 살필 기회가 있었습니까?
▲최=나는 그의 집에 한번 초대받은 일이 있어요. 납치된 그해 김정일 생일날예요. 78년 1월에 잡혀갔는데 2월16일이 그 사람 생일이었지요. 북한여성들은 치마·저고리만 입는데 김정일 부인은 흠 가운, 홈 드레스를 입고「내리닫이」(원피스), 롱 드레스도 입어 놀랐어요.
-만찬이었나 요?
▲최=점심식사였어요. 가족적 분위기로 나를 초대했더라고 요. 7살쯤 된 아들이 있는데 나한테 인사시키더군요.
식사를 끝내고 현관으로 나오는데 마당의 통로 옆에 폭죽을 쫙 장치해 놓고 터뜨려 깜짝 놀랐어요.
당 간부들이 모이는 휴식처라는 곳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거기선 사우나 시설을 해 놓은 걸 자랑하더군요. 북한사회에서는 비교적 사치한 사람들인데 거기서는 코냑도 마시고 외국산 과일도 먹어요. 그런데 이곳 복도에는 울긋불긋 조화를 아치 식으로 걸어 놓고 색 등도 달아 놓았어요. 이 꽃이 어떠냐는 데 그렇게 유치할 수가 없어요. 내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인지 다음에 갔을 때는 다 치웠더군요.

<사우나시설도 자랑>
▲신=북한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아서인지 건물들도 다 유치합니다. 평양에는 10층, 20층 이상 짜리 건물이 많은데 엘리베이터가 없지요.
▲최=혹간 있어도 가동을 못하고 있어요.
-전기 때문인가요?
▲신=전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 고장이 나서 못 움직이지요. 또 하루에 두 세 번씩 정전도 돼서 안되지요.
-김정일이 금광하나를 개인소유로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신=이름은 모르지만 자기 기밀 비로 쓰기 위해 하나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 간부한테 들었는데 아주 자랑스럽게 돈걱정 말라면서 그러더군요.
당의 구좌 말고 자기개인 구좌도 있는 것 같아요.
-개인 구좌에는 돈이 얼마나 있나요?
▲신=지금 빈에「금별 은행」을 차려 놓고 돈은 마음대로 씁니다.「금별」이란 것은 김일성의 호입니다. 거기를 통해 여러 가지 거래를 했을 겁니다.
-당 간부는 김정일이 금광을 갖고 있으니까 돈걱정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신=네.
-영화 만든 자금이 그 금광자금이라고 생각합니까?
▲신=아니오. 그건 당 자금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금광으로 쓰는 돈은 완전히 기밀 비인 것 같습니다. 간첩활동이라든가….
-그들이 남침 후 통일하면 남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지지하리라고 믿고 있습니까?
▲신=아니지요. 지지한다고 생각 안하고 강제로 만드니까, 다 자기 거니까 된다 구 본인이 그렇게 말해요. 본인은 북한의 기술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안단 말입니다. 왜 그런 이야기가 때때로 나오는가 하면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막히는 게 있으면「이제 통일만 되면 다 잘 된다」이러는 것입니다.
▲최=「통일이 되면」이 아니고 자기네 힘으로 꼭 통일을 시키겠다는 거지요.
-그쪽 관리나 누가 실제로 남한침략을 위한 구체적 계획 같은 것 이야기하는 것들은 적 있습니까?
▲신=침략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한데는 이야기 안 해요. 우리에게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어요. 우리도 보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잘못 사는 곳은 못 봅니다. 여하간에 저 사람들이 무력에도 돈을 썼지만 첩보관계에도 막대한 예산을 쓴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북한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신=아직도 미국인을 칼로 찌르고 「미제의 각을 뜬다」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지요.
▲최=우리가 거기 있을 당시에「솔라즈」미국 하원의원이 왔어요. 그 사람은 인권 옹호하러 북한을 방문한 것이겠지만 나중에 뉴스 화면을 보니까 미국사람들이 북한이 좋아서 왔다고 크게 선전을 해요. 또 김일성이를 존경하기 때문에 왔다는 식입니다.

<7살 짜리 아들 있어>
우리도 민간인하고 접촉 못하게 하고 아무 데나 방문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본 것인데 국민학교 교과서에 미국군인들 죽 정렬시켜 놓고 애들이 총을 쏴서 몇 명을 죽였으며 남은 건 몇 명이냐 식의 산수문제가 나와 있어요. 설사 그런 것까지야 했는데 직접 봤지요.
-김정일이 정권을 완전 인수하면 전쟁위험이 커질 것으로 봅니까, 아니면 줄어들 것으로 봅니까?
▲신=거꾸로 대답하지요. 지금 김일성이 죽으면 전쟁을 못해요. 김정일이 실각할 테니까 말입니다.
▲최=그럴 것이라고 해야지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신=전쟁 안 하면 개인숭배체제를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 없다고 봅니다. 또 전쟁해서 남북통일 안 하면 살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쟁은 필연적입니다.
-김정일 본인도 김일성 사후 걱정을 합디까?
▲최=본인은 말 안 하지만 여러 가지 행동에서 그런걸 느낄 수 있어요. 파티에 나가면 김정일의 여동생이 우리한테 접근해서『우리오빠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주위에 모읍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인재를 모으고 모은 인재와는 가까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 돈도 주고 물건도 주고 하지요. 그러나 그건 소수지 다수는 못됩니다.
-김일성이 죽은 후에 대해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적 있어요?
▲최=김일성 죽기 전에 통일되어야 한다고 많이 말하더군요.
▲신=우리 데려다 우수한 영화 만든 것도 김정일이 점수 따기 위한 것이었어요. 우리가 도망 온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우리보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회상기를 쓰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억류생활 수기 계획>
-김정일이 늙은 지도자들과 만날 때는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신=노소의 관계가 아니고 하느님·왕자 같은 관계예요. 김정일이 물건을 보내 주면 받을 때 김정일 사진을 앞에 놓고 김정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인수 식을 합니다. 나는 그런 것 안 당했는데 최 여사는 한번 당했어요.
▲최=김정일이 영화 촬영소에 메시지를 보내올 때는 중간 간부들이 차렷 자세로 그 말을 들어요.
김정일의 개인숭배가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사람 학생 때 영화 본 자리에「김정일 혁명 사적 관」을 짓고, 학생 때 야영한 산에도 사적 관을 세울 정도예요. 형제 봉 근처에 그런 사적 관이 있는데 중앙당 간부들을 참관시킬 때는「늘 차만 타고 다니느라 건강에 좋지 않으니 걸으라」고 해서 산을 반 바퀴 돌게 하더군요.
-김정일 노래라는 건 무엇입니까?
▲최=두꺼운 노트에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모아 놓았어요. 북한에는 명곡 6백곡 집이 있는데 모두 김일성 부자 찬양하는 것뿐이고 다른 노래가 없어요.
▲신=헝가리에「고샤·프렌치」라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보고『너의 나라에는 오랜 문화가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더군요. 뭘 보고 그러느냐 하면, 어느 헝가리 영화 팀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북한에 갔더니 모든 인터뷰의 시작이「위대한 수령님」으로 시작되더라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한국·미국·세계에 대해서 갖고 있는 견해는 어때요?
▲신=동남아에서는 우리 이미지가 나쁘니 좋은 영화 만들어 이미지 개선을 해 달라고 그러더군요. 유럽 쪽은 좀 나아서 그럭저럭 되겠는데 동남아 쪽은 죽겠다는 겁니다.

<9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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