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공동화 확산…국내 U턴 대기업 3년간 1곳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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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체에 전장장비를 납품하던 A사는 지난해 생산설비를 매각하고 폐업했다. 연 4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던 업체였지만 완성차 업체의 국내생산 감소로 공급물량은 매년 줄었다. 이 회사 대표였던 B씨(54)는 “ 몇 년가량 사업을 할 순 있었겠지만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그만두는 게 순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강성노조·규제 탓에 해외로
협력업체 일감·일자리 타격
차 부품업체 매출 12% 줄어

국내 기업의 오프쇼어링(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국내 산업공동화가 가속화하면서 중소·중견 기업의 일감 부족,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4일 한국자동차부품협동조합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완성차 계열사가 아닌 자동차 부품업체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7%나 감소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 함께 진출하지 못했거나 진출했더라도 부품 공급이 줄어든 중소 부품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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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은 현지 부품조달 비율을 늘리는 추세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0년 해외법인으로의 부품·소재 수출 증가세는 44.5%에 달했지만 2014년엔 0.6%에 불과했다.

오프쇼어링에 따른 산업공동화를 막기 위해 우리 정부는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에 관한 법률’(유턴기업 지원법)을 제정해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의 국내 복귀)을 지원했지만 이 법의 적용을 받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중소기업 80곳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돌아온 건 올 6월 LG전자가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의 세탁기 생산시설 일부를 국내로 옮겨온 것이 유일하 다.

오프쇼어링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문제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1990년대 말부터 해외생산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지는 데 10년 이상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2006년 이후 6년 만에 10%포인트가 늘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생산을 늘리는 건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강성 노조와 같은 기업 문화적인 요인이 해외 생산 확대를 부추기기도 한다. 임금 대비 낮은 생산성, 경쟁국 대비 상대적으로 많은 규제 등도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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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들도 경쟁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리쇼어링 정책을 본격화한 2009년 이후 2014년까지 700개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왔다. GE·캐터필러 등 대기업도 많았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내수기업을 육성하고 대기업도 고부가 분야를 국내에 잔류시켜 고용과 소비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프쇼어링·리쇼어링

기업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을 오프쇼어링(off-shoring), 국내로 복귀하는 걸 리쇼어링(reshoring)이라 한다. 미국·일본 등 은 국내 경제활성화를 위해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동현·김경미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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