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건강] 부부싸움 '잘 하는'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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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부부들의 언쟁은 가위 '파괴적'이다. 서로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내고 건강마저 해친다. 아예 쪽박을 깨는 부부도 부지기수다. 부부 인연의 끈이 과거보다 짧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화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최근 아내와 말다툼하다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온 K씨(47). 병원 도착 당시 측정한 그의 수축기 혈압은 2백30이었다. 평상시 건강검진에서도 정상이었던 그가 부부싸움으로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최근 미국 마이애미대학 타마라 뉴튼 박사팀은 부부간 의견이 상충하는 대화를 지속하면 혈압.맥박이 증가해 심혈관 계통에 손상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러한 신체 변화는 특히 양육태도, 친정이나 시댁 식구와의 관계, 소비 패턴, 성생활 등에서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부부싸움은 일반적인 언쟁과 달리 상대방의 태도를 바꿔놓으려고 집요하게 강요한다는 특징이 있다. 타인과의 싸움은 잘잘못을 가리면 끝나고 흥분상태도 가라앉는다.

반면 부부싸움은 배우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이 계속돼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부조화가 지속된다는 것. 혈압.맥박.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면역기능도 떨어져 질병에 잘 걸린다. 백상신경정신과 박수룡 원장은 "부부싸움이 잦은 부부 세명 중 한명은 만성질병에 걸리거나 수명이 단축된다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부부싸움이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방의 성격.스타일을 파악한 뒤 장.단점과 대처방안을 익혀야 한다.

예컨대 폭발형 성격이라면 본인은 감정자제 훈련을 해야 하고, 배우자는 상대방의 감정이 격앙되고 있다고 느끼면 곧바로 대화를 끝내야 한다. 회피형일 땐 본인은 감정표현 방법을 익히고, 배우자는 상대방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끝까지 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부족하면 부부 사이는 불신이 깊어져 금이 간다. 일례로 폭발형 성격과 확인형 성격이 만나 각자 스타일대로 살다 보면 폭발형 배우자는 상대방이 냉정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확인형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하는 철부지라고 느낀다.

배우자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변에서 '한 쌍의 원앙'으로 불리는 동갑내기 J씨(46) 부부는 "좋은 금실은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매사에 나와 다른 잣대가 있을 수 있으며 내 생각대로 상대방을 평가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부부간 대화에서 수칙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표 참조). 말을 하다가 한명만 화를 내도 일단 대화를 중단하는 게 좋다. 그 자리에서 결론내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솔직하자'며 배우자의 잘못을 다그치거나 부정적 말을 해서도 안된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고경봉 교수는 "'왜 그런 식으로 하느냐''당신의 이런 점이 문제다''앞으로 이런 식으로 해라' 등의 지적이나 요구를 삼가라"고 강조했다. 대신 상대방의 특정한 행동 때문에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면 된다. 배우자의 성격을 고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성격은 천성이라 바꾸기 어렵고, 또 성격이 비슷해야 금실이 좋은 것도 아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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