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해운회관 10층. 해양수산부 해운·항만·물류 비상대응반 주재로 열린 점검회의에서 물류업계 임원들이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재진 CJ대한통운 부사장은 “싱가포르항에서 가압류된 5308TEU(1TEU=20피트 컨테이너 한 개)급 선박 ‘한진로마호’에서 컨테이너를 반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배에 실린 컨테이너 50여 개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성사시킨 한국형 원전 건설에 필요한 부품들이 바로 이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
싱가포르서 컨테이너 50개 가압류
제때 도착 못하면 원전 건설 차질
미국 추수감사절용 식재료 못 내려
물류업계 “정부 나서달라” 애태워
또 다른 물류업체는 독일 함부르크 야적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를 반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금을 확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업체에 따르면 함부르크 터미널 측은 개당 2500유로(약 320만원)의 보증금과 500유로(약 63만원)의 비용을 지급하면 컨테이너 반출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장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식품업체의 화물을 운송하고 있는 또 다른 국제물류주선업체도 “하필 미국 쇼핑시즌을 앞두고 대혼란이 발생했다”고 푸념했다. 추수감사절과 블랙프라이데이에 사용할 식재료가 바다에 둥둥 떠 있다는 거다. 이 업체는 “식재료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기한 내에 냉동창고에 적재해야 하는데 기한을 못 맞출까 봐 화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며 정부가 하역작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화물 운송 중단사태가 장기화되면 화주들이 줄줄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한진해운을 살려내는 게 화주를 안심시키고 물류대란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물류대란이 현실화됐지만 정부는 똑 부러진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수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귀담아듣고 기획재정부와 협력해 방안을 찾 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물류대란의 직접적 당사자인 한진해운 관계자는 이날 점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글로비스·삼성SDS 등 6개 물류기업과 12개 해운사만 참석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물류업계의 의견을 한진해운에 전달하고 다시 한번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협의하겠다”고 언급했다.
물류업계가 잃어버린 화물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해상정보컨설팅의 라스 옌센은 “2001년 한진해운보다 규모가 작은 조양상선 파산 당시 컨테이너 200개를 되찾는 데 6개월이 걸렸다”며 “한진해운은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일부 화물을 되찾지 못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한진해운과 함께 국내 2대 선사인 현대상선 경영진추천위원회는 현대상선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유창근(63) 인천항만공사 사장을 추천했다고 2일 밝혔다. 유 후보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해 역할이 중요해진 현대상선의 상황을 감안해 정식 선임 이전인 다음주부터 업무에 착수할 방침이다. 1986년 현대상선에 입사한 유 후보는 2012년 이 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글=문희철·박진석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