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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현대사회 연 정치발전 대토론회 지상중계|대통령 중심제|장을병<성대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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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정국이 권력구조를 둘러싼 논쟁으로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과연 현시점에서 우리가 택해야 할 정부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14일 상오 힐튼호텔에서 열릴 현대사회연구소(소장 윤양중)주최 학술토론회의「한국정치발전의 현실과 과제」주제발표 논문 중 우선 정부형태에 관한 두 편을 요약, 소개한다.
36년이란 헌정사 속에서 채 1년 도 못되는 민주당정권을 제외하면 우리는 대체로 대통령중심제의 정부형태를 채택 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헌정사에서는 대통령중심제가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심지어 이렇듯 대통령중심제가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었기에 순수한 의원내각제 정부형태였던 민주당정권 때에도 한낱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던 대통령의 위광이 제도 이상으로 강했고, 정치적인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통령은 권한 밖의 발언을 행사할 정도였다.
더욱이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의원내각제를 경원하고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하게 만든 것은 5·16이후에 등장한 군부세력이었다.
그들은 의원내각제 하에서 이루어진 민간정치인들의「폴리티컬 게임」을 부패와 비능률의 요인으로 보았고 정치악의 근원으로 간주했다. 여기에 일반 국민들도 의원내각제는 혼란과 무질서와 부패의 온상으로 여기기에 이르렀고 상대적으로 대통령중심제는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제도적 장치로 여기게 됐다. 이렇듯 대통령중심제의 선호는 좋든 나쁘든 우리의 정치전통으로 굳어졌다.
흔히들 대통령중심제는 독재화할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에 견제책을 마련함으로써 그러한 우려는 해소할 수도 있다. 더욱이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중심제가 실패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유신체제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현행체제 이전에는 대통령중심제가 결단코 실패했다고 볼 수 없다.
유신 이전의 대통령중심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비판세력이 체제 옹호론을 들고 나왔는데 반해 집권세력이 위헌 내지 파헌을 자행해서 대통령중심제를 변질시키는 현상이었다. 말썽 많은 유신체제도 기존의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는 집권자의 권력연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파헌을 통해 수립된 것이다.
유신 이전에는 대통령중심제가 대다수 국민들의 숭앙 심을 이끌어 냈고 체제거부의 투쟁심을 빚어낸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비판·거부해야 할 것은 유신이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체제여야지 순수한 대통령중심제일 수는 없다. 오히려 순수대통령제의 전통을 가꾸고 다져 나가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애절한 정치적 소망하나를 갖고 있다. 그것은 유신체제가 수립됨으로써 빼앗겨버린 대통령의 선출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아보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애절하고도 한결 같은 소망이다.
국민들은 간접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어디선가에서「내려온」대통령처럼 느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스스로의 손으로 뽑겠다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대통령중심제 선호사상이 깔려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 실시된 대통령직선제가 하나같이 실패했다지만 사실 실패한 것은 60년의 3·15부정선거뿐이며 그것은 제도의 잘못이 아니라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집권세력의 작태에 책임이 있다. 더욱이 56년의 정·부통령 선거와 63년, 71년의 대통령선거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능성마저 안겨준 성공적 사례다.
지금 우리는 해결해야 할 숱한 과제들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테두리 속에서 리더십과 능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허물어뜨리는 독재는 반대해야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속에서 리더십과 능률을 제고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다. 민주적 정부형태 중에서 리더십과 능률을 가장 제고할 수 있는 정부형태는 대통령중심제라 믿기에 누적된 난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 될때 까지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본다.
정파들 사이에 벌어지는 폴리티컬 게임에 항시 관심을 쏟아야하는 의원내각제나 인위적으로 권력을 분산시켜 헌법기관들 사이에 권력의 충돌현상을 빚기 쉬운 일완정부제는 우리 앞에 산적된 과제들, 그것도 난마처럼 뒤엉킨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는데는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화할 소지만은 철저히 막아놓고, 일정한 임기동안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대통령중심제가 무엇보다 우리의 실정에는 적합할 것 같다.
모든 정치제도가 그러하듯이 의원내각제에도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의원내각제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려면 무엇보다 정당제도가 확고히 자리 잡혀야만 한다. 의원내각제는 정당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폴리티컬 게임을 기본요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당들이 국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양당제든 3당제든 다당제든 폴리티컬 게임의 주체인 정당들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나라에서는 의원내각제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정당들이 채 자리잡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의원내각제의 특성인 폴리티컬 게임이 무정견한 이합집산으로 타락해서 무질서나 정치적 부패의 온상으로 되고 만다.
따라서 의원내각제의 성패의 근원은 그 나라의 정당제도가 얼마큼 자리잡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양당제도가 뿌리내린 나라는 국민들이 총선거에서 자기들의 의원을 선출할 뿐 아니라, 수상이나 내각을 선출하는 결과까지 빚어낸다. 반면에 다당제 하에서는 국민들은 자기들 의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끝나고 수상이나 내각의 선출은 정당들 사이에 타협으로 이루어지기에 국민들과는 직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선거제도나 이데올로기 상의 제약으로 줄곧 양당제적인 성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50년대 후반에도,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말까지도 그 나름으로 양당 제를 자리잡아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80년에 등장한 새로운 집권세력은 다당제를 표방하면서 정당들을 인위적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85년 2·12 총 선에서는 자생 야당이 출현해서 정당제도를 재편성하는 현상을 빚었고 기존의 양당제로 복귀하려는 듯한 경향을 나타냈다.
우리나라의 정당제도가 기존의 양당제로 복귀하든 새로운 다당제로 나아가든 현재는 재정비되고 있는 과도기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정당제도가 확고히 자리잡히지 못한 현 시점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것은 그 제도의 장점을 위축시키고 단점만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 의원내각제의 채택여부는 우리나라의 정당제도가 확고히 자리 잡히고 난 다음에 논의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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