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로비」로 뚫는다 | 아시아 각국의 대미 활동을 보면…&&일본이 가장 극성… 87사와 계약 | 대만은 조용한 초청 외교로 대응 |「디버」와 계약한 한국은 성과 부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홍콩=박병석 특파원】
미국의 보호주의 물결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각 국의 대미 로비활동이 격화 돼 이 문제가 최근 미 의회 및 언론의 새로운 주의를 끌고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5일자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는 아시아 각 국이 워싱턴에서 벌이고 있는 로비 활동 실상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84년 말 현재 미 당국에 등록된 워싱턴의 아시아 각국의 로비회사 수를 보면 일본이 87개로 가장 많고 한국(39), 중공(24), 자유중국(23), 인도(13), 태국(11) 순이다.
싱가포르(9), 필리핀(9), 홍콩(8), 인도네시아(8), 말레이지아(5), 캄보디아(2), 방글라데시 (2), 파키스탄(2), 라오스(1)가 다음을 잇고 있다.
과거 이들 아시아 각국의 워싱턴 로비는 의회·국무성·국방성의 주요 인사들과 긴밀히 접촉해 미국의 경제 및 안보에 관한 지속적 지원을 다짐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들 국가들은 미 보호 무역주의의 물결을 헤쳐가야 하는 경제 문제를 새로운 로비 과제로 삼게 됐다.
일본의 여러 회사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한 로비이스트는 『아시아 고객들은 항상 미국의 보호주의 위협하에 있어 다음번에는 또 어떤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알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로비활동은 과거 5년간 급신장해온 무역흑자 증가와 비례해 왔는데 현재 연간 약 5천만달러를 로비 활동에 지출, 이 방면에서는 워싱턴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일본 정부나 회사를 위해 일하는 미국인 로비이스트 명단은 마치 미국의 주요 인명록을 보는 것과 같다. 미 의회나 행정부의 전직 고위 관리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현재 일본 전체보다 더 많은 변호사가 있는 워싱턴에서 가장 많은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
일본의 로비활동은 거의 경제문제와 결부돼 있으나 예외적으로 자민당이「니카이도·스스무」 부총재의 워싱턴 방문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25만 6천달러를 들여 그레이사와 계약을 체결한 일이 있다.
그레이사는「니카이도」 부총재에게 기자 질문에 답변하는 요령에서부터 「레이건」 미 대통령과의 면담까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최근까지 저자세의 로비활동 접근 방식을 취해 왔다.
한국은 77년 박동선 사건 이후 로비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으나 최근 점증하고 있는 미국의 보호주의 위협에 대처, 서서히 로비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첫번째 시도중의 하나가 82년 설립된 한국경제연구소(KEIA)로 전직 미 외교관 2명과 1명의 전직 의회 직원이 종사하고 있다.
한국의 가장 야심적인 로비사업은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났다.
작년 10월 한국국제문화협회는 지난 5월까지 백악관 참모로 있었던 「마이클·디버」와 88 서울 올림픽을 포함한 한국의 대미인식 제고를 위한 로비활동을 위해 연간 47만 5천달러짜리 계약을 맺었으나「디버」가 미 정부 윤리 규정의 위반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됨으로써 그 목적 달성은 의심스럽게 됐다.
「디버」는 또 2천 5백만달러에 달하는 한국의 한 상사의 관세부정 사건 해결을 돕기 위해 그 회사와 25만달러로 추산되는 계약을 체결, 재무성 고위 관리들과 많은 접촉을 했으나 성과는 신통 찮은 것 같다. 미 세관당국의 벌과금은 약 1천 1백만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 역시 미국과의 교역증진을 위해「디버」와 연간 25만달러의 수수료 외에 경비를 별도 지급키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그의 로비활동에 대한 비판이 심각해지자 4월에 「디버」와의 예정된 계약을 취소했다. 취소의 공식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 때문이라고 했다.
홍콩은 요란스러운 활동을 벌이지는 않지만 말썽 많은 로비이스트와의 관계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상무성의 고위 관리를 지낸 섬유 전문가가 이 비판에 관련돼 있다.
「마르코스」시대 필리핀의 로비활동은 그의 실추된 정치적 이미지 개선에 집중돼 한 로비회사에만 지난해 11월 1백만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마르코스」는 결국 망명길에 올랐다.
자유중국은 79년 미국과의 국교단절로 큰 타격을 받았으나 자유중국의 준외교기관인「북미조정위원회」등의 노력으로 양국의 안보유대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 계속 되고 있다.
대만은 친대만파 의원의 선거구로부터 상품을 구입하거나 조용한 외교 로비활동을 하면서 영향력 있는 관리들의 대만 초청도 계속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