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장벽 세우겠다더니…급해진 트럼프, 멕시코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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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左), 니에토(右)

미국 대선이 10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 우세’로 흐르는 듯 했던 대선 정국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먼저 열세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멕시코 방문’이라는 깜짝 승부수를 띄웠다. 트럼프는 지난 30일 밤(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들인다. 내일(31일) 회동이 매우 기대된다”고 발표했다. 멕시코 정부도 트위터를 통해 “두 사람은 (멕시코시티에서) 사적으로 회동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자기를 히틀러·무솔리니에 빗댄
니에토 대통령 초청 받아들여
히스패닉 표로 수세 반전 노린 듯
불법이민 추방정책 바뀔지 주목

트럼프는 그동안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 ‘마약 밀매자’로 비난해 왔다.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 정부에게 부담시킬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 트럼프를 향해 니에토 대통령은 “트럼프를 보고 있으면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떠오른다”(지난 3월)며 직격탄을 날려 왔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와 니에토 대통령의 전격 회동에 미 정치권과 언론은 “엄청난 거래”(CNN)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물론 멕시코 대통령이 최근 트럼프와 클린턴 양 후보 모두에게 멕시코 방문을 요청하긴 했지만 설마 트럼프가 ‘적진’으로 뛰어들어 담판을 지을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멕시코 대통령과의 회동 타이밍도 극적이다. 트럼프는 31일 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이민정책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한다. 멕시코 불법이민자 대책이나 다름없다. 그 수시간 전에 멕시코로 날아간다. 그 이유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당장 대선 판세에서 수세에 몰려 있는 트럼프로선 히스패닉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존의 강경한 이민책을 변경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명분을 멕시코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에서 찾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트럼프가 기존 지지층 이탈을 감수하면서 이민정책을 180도 선회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양보안을 내놓기 만무하다는 점에서 위험한 도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득인지 실인지를 치밀하게 계산했다기 보다는 일단 관심을 끌기 위해 저지르고 보는 ‘트럼프식 아마추어 정치’의 진수란 것이다.

또 하나의 돌발변수는 클린턴의 개인 e메일 스캔들을 둘러싼 ‘새로운 상황 전개’다. 미 정부는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보고서(30쪽 분량)와 클린턴 조사 기록 요약본(10여쪽)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동안 대선 정국에의 영향을 고려해 공개를 꺼려왔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정보 공개 요구가 잇따르면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이보다 더 폭발력이 큰 건 이미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던 30여 건의 ‘벵가지 e메일’ 복원이다. 미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이날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테러사건과 관련됐을 수 있는 e메일 30여 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클린턴 측이 제출한 5만5000쪽의 e메일에는 포함돼 있지 않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보수 성향의 법률단체 ‘주디컬 워치’가 e메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며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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