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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건 배당부터 잘못한 ‘아마추어 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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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승우
강승우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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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우
내셔널부 기자

법원 형사합의부가 맡아야 할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을 단독판사에게 배당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A씨(33)는 10대 청소년에게 30만원을 주고 성매수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인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단독은 A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다. A씨는 “형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A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의 형량이 낮아진 데는 항소심 재판부가 항소 이유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합의3부는 “합의부가 아닌 단독판사의 1심 판결이 관련 법률 규정을 위반했다”며 합의3부가 항소심이 아닌 1심 재판부 자격으로 원심 판결을 직권 파기했다. 쉽게 말해 이 사건은 부장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맡아야 하는데 부장판사 1명이 참여하는 단독판사에게 맡긴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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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셈이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단기 1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은 합의부가 1심 판결을 하도록 돼 있다. A씨 사건도 여기에 해당한다.

사건이 판사에게 배당되기까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른다. 검찰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되면 합의부 또는 단독 사건 여부를 분류한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셈이다. 합의부 사건인데 단독사건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분류가 끝나면 사건번호가 매겨지고 전자식으로 임의 배당을 거쳐 재판부에 넘긴다. 이 과정에서 직원(참여관)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담당 판사가 사건 내용을 확인하는데 여러 단계에서 아무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관계자는 “성인 여성 성매수 사건은 형사단독에서 맡지만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은 합의부에서 맡는 등 법원조직법상 예외 사항이 많은 데다 관련 법 개정이 잦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법원의 아마추어 같은 일 처리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재판장의 판결문 서명날인이 빠졌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같은 해 7월과 9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기본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아 상급심과 하급심을 오가는 ‘핑퐁 재판’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치열하게 법리를 다투는 재판에서 기초적인 오류로 판결이 달라지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은 실수가 법원의 권위를 좀먹는다.

강승우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