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대전 이라크 연불 어음, 국내서 할인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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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설회사가 중동 건설공사 대금을 어음으로 받아다 이를 국내은행에서 할인해 쓰려는 움직임이 있어 금융계의 불만을 사고있다.
H건설은 최근 이라크 공사대금의 일부인 1억 7천 2백만 달러를 어음으로 받기로 이라크정부와 합의하고 국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에 이를 할인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정부보증으로 발행될 이 어음을 할인해 줄 경우 ▲은행의 동일 기업여신한도를 훨씬 넘어버리고 ▲대 계열그룹에 대한 대출규정도 위반되는 데다 ▲설령 유가증권으로 간주, 매입한다해도 이라크 정부 보증어음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도가 전혀 없어 할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은 외국 수표를 추심 전 매입하는 형식으로 사들일 것을 고려중인데 액수가 크고 상환기간이 길어 재무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또 재무부가 이 같은 편법으로 외환은행의 매입을 허용해준다 해도 앞서 말한 여신한도 초과 등 대기업에 대한 각종 여신규제장치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셈이다.
H건설이 받기로 한 어음은 88년부터 4회 분할상환 한다는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재무당국은 유가하락·중동 건설경기 부진 등을 고려, H건설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될 경우 중동건설에서 공사대전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싯가보다 비싼 원유로 들여오던 해외건설업체들도 너도나도 사실상 시장성이 없는 어음을 받아다 국내 주거래은행에 할인요구를 해올게 뻔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계는 만약 H건설에 이어 다른 해외건설업체들도 이처럼 공사대전을 조건이 나쁜 어음으로라도 받아 할인요구를 해올 경우 그렇지 않아도 방대한 부실채권에 눌려있는 은행의 경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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