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의 변신론|전육 정치부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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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통보수야당을 자임해온 신민당이 진보적 또는 혁신적 요소를 받아들일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최근 당내에 있었다.
인천사대이후『신민당은 각성하라』는 재야와 운동권의 비판이 잇달자 김대중·김영삼씨가『학생·노동자·농민·도시영세민 등과의 연대투쟁』을 부쩍 강조하더니 이윽고 소장의원들간에 운동권이 말하는 이른바「기층민중」을 기반으로 한 국민정당론이 대두하고「혁신」을 수용할 정강정책의 수정론까지 거론되었다.
신민당내의 이 같은 논의는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혁신의 요소를 묵살만 할 것이 아니라 체제 안으로 끌어들일 단계가 되지 않았느냐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운동권의 주장을 판에 박은 듯이 용공으로 단죄만 할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사회주의적 욕구의 분출로 이해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힘을 못쓰는 우리 실정에서 신민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자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대해 밖에서는 물론 당내에서조차 우려의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선 급진 포용론이 심오한 이론판독이나 경험적 소신에서보다는 시류에 영합한 정치세력화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 좀더 냉정하게 말해 양 김 중심의 신민당지도부가 운동권의 이념적 측면을 도외시한 채 그들의 행동력과 투쟁력만을 자기네 정치적 목표달성을 외해 아전인수화 하자는 안이한 발상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또 정치 경력상 급진·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운동권을 우군화하자는 생각에서 갑자기 급진적 이념을 수렴하겠다고 외쳐서는 오히려 식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게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야당은 역대 전당대회에서 한번도 정강정책을 놓고 심각한 토론이나 대립을 보인 적이 없다. 이렇게 당권중심의 경쟁 풍토가 판을 치는 야당에서 정강정책의 수정으로 진보적 관심을 수렴하겠다는 것 자체가 일과성의 성의표시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전통 보수야당에 보혁 논쟁이 일만큼 급진세력의 제도정치권 수렴필요성은 커졌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미봉이나 일과성 성의표시로 수렴될 단계는 넘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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