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키스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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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30면

모든 혁명의 발화점은, 생각지도 못할 얘기지만, 바로 키스(Kiss)에서 비롯된다. 남녀 간의 키스. 입술이 부딪히고, 강렬하게 얽히며, 상대의 혀와 타액을 탐하는 키스. 몸이 밀착되고 한없이 달아오르다가 그 뜨거움에 서로의 영혼까지 타오르게 만드는 키스. 세상의 변화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거창한 이론이나 정치적 흐름 따위, 결코 필요치 않다. 바쿠닌 같은 도도한 혁명가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막을 수 없다. 아무도 그 뜨거움을 제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그 사랑의 파괴력을 당해 낼 수 없다.


‘이퀄스’의 연인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와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이 딱 그렇다. 이들은 연인이 되면 안 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사랑이라니! 그건 이 둘이 사는 세상에서는 금지어다. 세상은 망했다. 몇 년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그리 가까운 시기의 미래도 아니다. 언젠가 대전쟁, 곧 핵전쟁이 일어났고 전 세계에서는 딱 두 군데만 살아남는데 하나는 사일러스 등이 살아가는 첨단으로 문명화된 곳이고 또 하나는 ‘반도군’이라 불리는 미개지역이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야만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는 문명이니 야만이니 하는 것은 사실 이상한 ‘트릭’처럼 느껴진다. 사일러스와 니아가 사는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만 입는다. 모두들 감정통제구역에서 살아가는데 감정 보균자는 발견 즉시 격리 수용되거나 자살하게끔 유도된다. 그런데 그게 유토피아라고 한다. 반면에 감정이 넘쳐나는 저쪽 ‘반도군’은 인간이 살 곳이 아니라고 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암시를 바닥에 깔고 쉽게 얘기를 진행시킨다. 사일러스와 니아는 결국 반도군 쪽으로 갈 것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은 그 점으로 몰릴 것이다.

영화 속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자꾸 ‘감정의 병’이 생긴다. 일단 사일러스가 흔들린다. 니아는 흔들린 지 오래다. 사일러스는 흔들리는 니아를 보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곳 체제에서는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1단계에서는 약물 치료를 하고 2단계, 3단계, 4단계 식으로 점차 강도를 높인다. 단계가 높아지면 역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길거리, 일터, 생활 공간 모두 극히 획일화돼 있으며 하루 단 1초라도 감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누군가에 의해) 사람들은 재교육을 통해 프로그래밍 된다. 감정에 휘둘려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 대전쟁을 일으키며 사느니(꼭 국가 간 싸움이 아니더라도 개인 혹은 남녀간 싸움 역시 국가간 전쟁보다 더 폭력적이고 더 가혹할 수 있다고 상정할 때) 차라리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게 낫다는 교훈을 주지시키려 한다. 이들의 체제를 운영하는 콘트롤 타워에서는 계속해서 감정에 관한 한 언젠가 영구 항생제가 나올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우리들 모두가 ‘이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물질적 평등(equality)를 놓고 엄청난 갈등을 빚어 왔다. 그런데 아무리 물질을 똑같이 나눠 쓰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계층과 계급이 나뉨을 목격해 왔다. 그러므로 ‘평등사회’라고 하는 것은 물질 얘기 같은 건 애초부터 집어치우고, 일단 정신적으로 똑같아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 간에 결국 평등의식(the Sense of Equality)이 생겨나게 되고 또 그렇게 되면 이젠 거꾸로 자연스럽게 물질적으로 평등해지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기계적으로 보면 그럴 듯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게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 사람을 정신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것, 그럼으로 해서 다들 ‘이퀄스’가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사람은 평등해질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은 타자(他者)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간에 공정한 룰을 만들어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속 사일러스와 니아가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영화는 블루와 화이트 톤의 색감을 시종일관 보여주며 극도로 조직화된 미래사회의 차가운 느낌을 전해 주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두 연인의 키스는 그 모든 것의 전제조차 허물어뜨린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 산다 한들 연인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 넣는 체제, 혹은 국가 시스템, 정부는 결코 올바른 조직이 아니다. 그건 옛날이든 지금이든, 아무리 먼 미래든 똑같이 적용될 얘기다. 국가란 궁극적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불편하게 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되는 존재일 뿐이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퀄스’의 얘기가 꼭 미래세계의 그것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 바로 그때부터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새삼 주변 환경을 되돌아 보게 된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당신은 우리의 아이들이 뜨겁게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으며 한없이 사랑하며 살고 싶어하는, 그 따뜻한 욕망을 채워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모멘텀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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