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 유산 받게 돕겠다” 사할린동포에게 1억 뜯은 미국인 모녀 딱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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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산상속·투자를 미끼로 거액을 가로채는 ‘국제 e메일 사기단’ 소속 미국인 모녀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국제 e메일 사기단 구속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미국인 모녀 M(67)과 O(46)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3~8월 부산 해운대에 사는 러시아 국적 김모(32·사할린 동포 3세)씨에게서 16차례에 걸쳐 97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김씨는 지난 2월 미국 한 은행의 직원 이름으로 된 e메일을 받았다. “사망한 먼 친척이 당신 이름으로 은행에 120억원의 유산을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다소 의아했으나 메일 속 친척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비슷해 믿게 됐다.

김씨는 “어떻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느냐”고 답신을 보냈다. 미국 은행 직원은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는 e메일을 보냈다. 이후 소개받은 변호사는 돈을 받는 방법 등을 설명하며 변호사비·수수료를 요구했다. 김씨는 그때마다 국내 은행을 통해 미국 은행의 특정 계좌에 돈을 보냈다. 돈을 보내면 인증서·영수증 등이 왔다.

이후 김씨는 “상속금이 거액이어서 테러·마약 자금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투자계약을 해야 한다. 대리인을 한국에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지난 7일 투자계약과 미국 영사관의 공증을 위해 입국한다는 M과 O를 만났다. 김씨는 이때 또 “공증 등에 필요하다”며 모녀가 요구한 7500달러와 현금 6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거듭된 돈 요구에 의심이 생긴 김씨는 부산의 미국 영사관을 찾아가 공증서류와 공증비 영수증(7500달러)을 내밀고 진위를 물었다. “이런 서류에 공증해 주지 않는다”는 미 영사관 측 답변에 부랴부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지난 10일 출국 세 시간을 앞두고 있던 모녀를 부산의 한 호텔에서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모녀는 국제 e메일 사기단의 국내 대리인과 수금책 역할을 하며 수차례 국내에 입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이미 피해액 5억원 상당의 다른 3건의 사기 범죄에도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유산상속과 기업 투자 등을 미끼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국제 e메일 사기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e메일은 주로 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토고 등 서아프리카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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