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유학」의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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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작정 유학」이 유학생 본인뿐 아니라 교포 및 유학생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시키고 있음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 파리주재 특파원의 보도를 보면 언어소통의 불편과 학업부진 등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유학생들이 날로 늘고 있다.
더구나 호화판 도피성 유학생들의 생활자세나 수학태도는 나라망신까지 시키고 있다.
모두가 뚜렷한 목표나 각오도 없이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 지고 장에 가는 격으로 덩달아 유학 길에 오른 학생들의 어두운 단면이다.
문교부 집계로는 작년 6월말 현재유학생수가 2만2백74명이고 공식집계에서 빠진 유학생까지 합치면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물론 이중의 대부분은 국내의 교수진이나 연수시설에 한계를 느껴 보다 나은 여건에서 세계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려고 유학한 경우로 인정되지만 요즘 들어 이른바 도피성 유학이나 호화유학생들이 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해방 후 개방과 폐쇄로 왔다갔다했던 우리나라 유학정책이 저년부터 「개방」쪽으로 문이 열리자 안이한 생각으로 앞다퉈 빠져나간 무분별한 유학생들도 사실 상당수 있다.
대학재학생이면 무조건 해외유학이 가능하고 고교졸업생도 성적이 20%이내에 들면 유학할 수 있고 거기다가 어학연수 명목으로 나간 학생들의 일부도 현지에 눌러 앉았다.
대학진학에 자신이 없거나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학교나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고 졸업정원제에 위협을 느끼는 학생이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유학이다.
해외에서의 수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어학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 국내대학에서의 수학능력조차 의심되는 이들 도피성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겪는 고초나 고민이 어떠하며 끝내는 방황하게 되리라는 것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해외에서 뿌리는 엄청난 외화의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인 자원활용의 비효율성으로 빚어지는 손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유학」또는 「저질유학」으로까지 불려지고 있은 이들의 해외유학이 장차 우리 국익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연간 해외유학 공식송금이 2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경시될 수 없다. 거기에다 비공식 송금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액수이리라.
오죽해서 도피성 유학생들을 스카웃 하려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상주하게끔 이르렀겠는가.
도피성 유학생들의 불행이나 부작용은 결국 유학한 당사자나 학부모들의 책임으로 귀결되지만 당국의 해외유학정책의 빈곤에도 큰 원인이 있다.
무자격자를 엄격히 골라내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나 장기안목의 유학정책 없이 성급히 이뤄진 유학개방정책이 자초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문교부는 뒤늦게 올해부터 해외유학기준을 강화했지만 이체부터라도 확고한 정책목표를 세워 옥석을 가리는 휴학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위주의 유학편재도 재검토해야 한다.
학문의 다양화와 기술유입의 다변화를 의해서도 유학정책은 질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해외유학정책의 기조나 초점이 국내 대학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켜 끝내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물론 사회일반의 인식까지도 유학무용론 내지는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는데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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