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미국인들 테러에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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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원상 특파원】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코스인 샹젤리제와 피갈거리,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 베르사유 궁에서 요즘 미국관광객을 만나기가 부쩍 어려워졌다.
미국의 리비아폭격이후 「카다피」의 보복테러위협으로 유럽, 특히 파리를 찾는 미국인이 거의 없어진 탓이다.
올 여름 남불 칸에서 열리는 제39회 칸영화제에 참석할 예정이던 미국영화감독 「스티븐·스필버그」「마틴·스코르스즈」와 『람보』의 「실베스터·스탤런」 등 상당수의 영화배우들이 프랑스행 스케줄을 아예 취소했다. 세계적인 인기가수 「프린스」와 미 로크그룹 「맨해턴·트랜스퍼」도 파리공연을 포기했다.
해마다 1백50만 명의 미국인관광객을 맞아들였던 파리의 관광업소들은 미국으로부터의 줄이은 예약취소로 완연 울상이다. 유럽의 관광전문가들은 유럽을 찾는 미국인관광객이 작년보다 80%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같다.
파리의 미국사회가 테러위협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과도 영어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즐겨 찾던 햄버거 집이나 미국식당에 가지 않은지가 오래됐다는 미국유학생이 있는가 하면 장보기가 두렵다는 미국인주부도 많다.
아메리컨 스쿨의 하나인 해밀턴 칼리지 학교당국은 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고 1천명의 학생(이 가운데 45%가 미국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아메리컨 칼리지는 교문에 붙였던 학교간판을 일찌감치 떼어버렸다.
모든 미국계학교 학생들은 강의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일이 신분증확인과 가방검색을 받아야 하며 학교에서 운영하는 통학버스에 부착된 「파리 아메리컨스쿨」이란 표지판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파리주재 미국대사관을 비롯, 미국도서관·TWA·IBM등 주요진출기업에 대한 경비가 밤낮으로 삼엄해졌으며 미국계의 각종 건물에서는 「미국계」임을 알리는 각종 표지판 등 부착물이 사라졌다.
현재 파리의 미국계 건물가운데 「요새화」되지 않은 곳은 조지5세가에 있는 미국인 성당뿐. 이곳은 부근에서의 주거를 막기 위한 가벼운 철책만이 둘러쳐져 있어 방탄재킷을 입은 경비원들의 기관단총 총구가 번득이는 미국계 다른 건물들과 무척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조·로저즈」미국대사는 미국인과 미국재산에 대한 각종 테러위협에 대비,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완벽한 안전대책을 강구토록 미국계 병원·학교·기업·교회 등에 강력히 지시했으며 특히 외교관들에게는 매일 같은 시간에 외출하지 말 것, 부유한 미국인 티를 내지 말것, 집안에 안전대피소를 마련해 둘 것 등을 당부했다.
이처럼 미국인사회의 자체경비강화와는 별도로 프랑스 경찰 및 테러방지당국의 미국인 관광객 및 미국기관 보호노력도 종전의 몇 배로 늘어 파리시내는 오히려 일반시민이나 외국관광객들 보다 경찰견을 데리고 거리를 순찰하는 정비경찰들로 가득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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