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노-김 실세대화」로 돌파구 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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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30청와대회동과 5·3인천사태를 거치면서 정국이 한층 복잡 미묘한 양상으로 진전되고 있으나 문제를 조정하고 풀어야 할 여야대화는 오히려 정체된 감이 없지 않다.
8일의 3당대표 오찬회담을 시발로 대화가 재개될 전망이나 「슐츠」미 국무장관의 방한, 인천사태의 수사결과발표, 이민우 신민당총재의 방미 등 여러 외적요인으로 실질대화는 아무래도 이달 하순께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인천사태 후 여당의 연이은 대화제의에 야당은 어찌 보면 회피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신민당측은 6일로 예정됐던 총무회담에 응하지 않았고, 국회내무·문공위 및 임시국회조기소집제의에 대해서도 자체의 인천사태진상조사 후 또는 이 총재의 방미귀국 후로 결정짓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회가 열리면 인천사태에서 드러난 운동권의 폭력성·좌경성이 여당의 공격호재가 되고 야당으로서는 이에 동조하기도, 또 반박하기도 어려운 지극히 미묘한 입장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 일단보류방침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통상적인 여야입장이 완전 역전된 것 같은 형세다.
그러나 4·30청와대회동에 따라 여야 모두 대화필요성은 한층 높아졌고, 인천사태로 필요성이 더 증폭된 만큼 대화로 가는 과정과 명분창출이 문제일 뿐 대화재개는 시간문제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가장 사심을 끄는 것이 이른바 실세대화다. 실세대화란 대화의 내용과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실력자끼리의 절충을 못한다.
지난번 청와대회동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에게 『김영삼씨를 한번 만나 보라』고 지시함으로써 우선 노-김 회담이 실세대화의 한 정형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 대표는 인천사태 후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는 대화의 한 방법으로 김영삼 신민당상임고문과의 대화를 정식으로 제의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다소 소극적 자세를 나타냈지만 대화자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총론적 입장에서 보면 노-김 양인 모두가 자기진영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현실 여건상 각기 자기진영의 진의을 상대측에 비교적 명확하게 전달하고 또 합의된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갖고 있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양자간 대화는 정국을 보다 순리적으로 풀어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 확실시된다. 지금까지 각급 여야대화에서 힘이 뒷받침 안됐기 때문에 명확한 입장파악이나 대화내용의 실현에 어려움을 느꼈고, 그로 말미암아 합의된 사항이 왕왕 깨져 서로간의 불신풍조가 쌓여져온 점을 고려한다면 상호간의 진의전달의 유력한 창구를 확보하는 것은 뜻이 깊다하겠다.
특히 민정당 측에서 보면 계파간의 복잡한 이해로 얽힌 신민당에 대해 유효한 의사전달 창구를 갖게 됨으로써 신민당이 보다 신속하게 당론을 결집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야권의 두 김씨가 지금껏 전대통령과의 3군 회담을 제의해온 점을 생각한다면 노 대표가 김영삼씨와의 대화제의를 선제함으로써 여권내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노 대표는 자신의 공식상대역인 이민우 총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김씨와의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현실적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신민당의 책임있는 자리가 아닌 「고문」이란 위치에 있는 점도 대화의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여측의 상대역에서 여전히 배제된 김대중씨 문제도 만만치 않다. 야권 양대 산맥의 하나인 동교동계를 이끌고 있은 김대중씨가 이로 인해 여야대화를 선별적으로 견제하고 독자노선으로 치달을 경우 정국의 혼미는 더욱 가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지분을 어느 선에서 조정해주느냐는 문제도 고려돼야 할 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영삼씨는 여권측의 공식대화자로 인정받게 됨으로써 대여절충의 2선에서 전면으로 부상하고 사실상의 당 지도자로 부각되어 김대중씨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맞게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자신이 대여대화에 막상 나설 경우 김대중씨 및 이 총재와의 불화 내지는 관계악화의 가능성을 의식해야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김씨가 『민주화를 외해서는 누구와도 만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으나 대화내용도 문제이고 절차와 격식도 문제』라고 말한 것이 그 점을 잘 시사한다.
김대중씨 측은 4·30 청와대회동 이후 김영삼씨 측을 포함한 신민당이 여권과 개헌방향을 놓고 어떤 타협을 할 가능성에 미리부터 쐐기를 박는 노력을 해오고 있는듯이 보인다. 직선제 목표를 더욱 분명히 해야한다는 주장이나 내각책임제 회유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그의 일련의 발언이 그런 예다.
따라서 김영삼씨가 김대중씨의 그런 의구심을 어떻게 해소하면서 대화에 임할지가 관건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양자간의 괴리현상은 한층 깊어질 것이고 이는 김영삼씨에게 불리한 국면을 조성할 지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 총재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질 수 있다. 임기내 개헌의 진의파악을 이유로 전 대통령과 이 총재의 단독요담이 있은 후에야 4·30 청와대회동에 대한 당론을 밝히겠다고 한 신민당결정의 배후에는 이 총재의 격상과 김씨 견제의 미묘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 민정당측의 분석이다.
그러나 양진영의 이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긴 해도 노부회담이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그들간의 회동은 개헌협상에 관한 절차문제나마 여야간에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노 대표가 인천사태이후의 시국대책을 협의키 위해 김씨와의 회동을 제의하긴 했으나 실제로 그 성과를 기대해서라기 보다는 앞으로의 양자회동을 위해 선수를 친다는데 더 역점을 두었다는 관측도 있고 보면 더욱 그렇다.
예컨대 개헌협상이 어느 정도 궤도 위에 오를 때나 고위급 절충이 절실한 국면이 되면 양자회당은 열릴 수도 있고, 정국의 전개에 따라서는 노-김씨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여야 실세대화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간에 대타협을 하지 않고는 합의개헌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른바 실세대화는 당위성을 가지고 긴박한 수요로 등장하고는 있으나 현실적·기술적 난점 때문에 아직은 가능성단계에 맴도는 상황이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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