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에 최대 1억…사기골프로 40억 챙긴 일당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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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부지를 처분하려는 중소기업 대표에게 ‘사기골프’로 40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일당은 “대기업에 비싸게 공장부지를 팔려면 로비자금이 필요하고, 져주기 골프를 치면 문제가 안 된다”고 속였다. 중소기업 대표는 1타당 최대 1억원을 걸고 돈을 잃어주기도 했다.

18일 이 사건을 수사한 부산지검 형사3부(박억수 부장검사)에 따르면 새시 등 건설자재 제조업을 운영하는 A씨(65)는 2007년 부동산중개업자 김모(53)씨의 소개로 충남에 땅을 사서 공장을 설립했다. A씨는 김씨 소개로 28억원에 산 공장 부지가 70억원가량으로 가격이 오르자 김씨를 신뢰했다.

그러다 2009년 A씨는 미국의 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형 건물에 들어갈 새시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해 공장을 이전해 확장하기로 했다. 이에 A씨는 김씨에게 공장 부지 처분을 맡겼다.

하지만 김씨는 “대기업에 140억원에 땅을 팔 수 있다”고 A씨를 속였다. 그러면서 김씨는 A씨에게 “대기업 임원들에게 로비자금이 필요한데 내기 골프를 치면서 일부러 져서 돈을 잃어 주면 된다”고 조언했다.

A씨는 로비자금으로 수억원을 쓰더라도 140억원에 팔면 큰 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대기업 임원 행세를 할 6명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김씨는 6명을 3팀으로 나눈 뒤 팀별로 돌아가며 경기도와 제주 등 골프장에서 A씨와 사기골프를 쳤다.

A씨의 평균 타수는 80대 중반으로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로비자금을 줘야 땅을 팔 수 있다”는 김씨의 말에 일부러 퍼팅 실수를 했다. 초반에는 1타에 50만원으로 시작한 판돈이 나중에는 수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1타에 최대 1억원까지 판돈이 불어나기도 했다. A씨는 경기가 끝나면 차이가 난 타수에 이 판돈을 곱한 돈을 김씨 계좌로 송금했다. 이 금액이 많을 때는 3억원 정도였다.

김씨 일당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6차례에 걸쳐 이 같은 수법으로 A씨를 속여 40억6200만원 상당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4년이 넘도록 40억원이 넘는 거액을 쓰고도 공장 부지 매매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A씨는 2013년 7월 김씨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김씨와 주모(62)씨를 구속기소하고 다른 공범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달아난 공범 3명을 지명수배했다.

검찰 관계자는 “영화 타짜처럼 피의자들이 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해 범행했다”며 “단순 내기골프 도박사건으로 묻힐 뻔했으나 금융거래와 통화내용 분석 등을 통해 사기단의 실체를 밝혔다”고 말했다. 검찰은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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