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학여행길이 고생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봄철 수학여행이 예년보다 곱절이나 늘어 「만원」관광지서 학생들의 고생도 예년의 곱절이다.
콩나물시루 여관방서 발도 제대로 못 뻗고 새우잠자기, 허섭스런 날림 음식에 입 못대고 배곯기, 차 타고 내달리느라 안내판도 못 읽는 건성구경.
이 북새통 속에서도 업소에서는 한 학교학생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요금덤핑을 하는 가하면 인솔 교사들에게는 향응을 베푸는 등의 부조리도 여전하다.
이같은 전에 없던 봄철 수학여행 집중현상은 문교부가 전국 중 고교에 학생 수학여행을 아시안게임(9월20일∼10월10일) 기간을 피해 실시토록 지시한 때문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는 행정편의로 부작용도 집중돼 나타나고 있다.
◇혼잡=설악산·경주·제주·부여등 주요 수학여행지마다 4월 들며 예년의 곱절 학생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
설악산의 경우 요즘 하루평균 15개 학교 8천여명 학생들이 몰려들어 지난해의 하루평균 7개교 3천5백 여명에 비해 2배 이상 혼잡.
경주도 학생 손님이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늘어났다.
◇고역=3일 운악산 C단지 S여관에 투숙했던 여주 S고교 1년 생 4백70명 (인솔교사 12명) 은 5, 6명이 들어갈 방에 10명씩 들어가 새우잠을 잤다. 여관 측은 방마다 베개는 3, 4개, 이불은 5채씩밖에 안줘 학생들은 가방을 베고 옷을 다 입은 채 잠을 잤다.
충무로 수학여행을 갔던 대구시 H중 2년 유모군(14)은 『한방 10∼20명씩 들어갔는데 이부자리는 3채 밖에 주지 않는 데다 축축하고 냄새가나 급우들이 웅크리고 앉은 채 밤을 샜다』고 말했다.
수학 여행단 홍수로 음식도 더욱 질이 떨어져 학생들이 배를 곯기 일쑤. 유군등 대구 H중 2년생 8백여명은 여관측이 마련해준 점심도시락의 밥이 설 익은데다 반찬마저 콩·쥐치포조림·단무지 뿐. 학생들은 반 이상을 남긴 채 숟가락을 놓았다.
설악산 S여관이 13일 서울 K고교생에게 내놓은 아침식사는 당면과 나물을 버무린 엉성한 잡채밥과 맹물 같은 계란국·깍뚜기. 김모군(17)은 『매일 식사가 입에 안 맞아 빵·과자를 사먹고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무리한 일정=『2박3일의 일정중 반이상을 차 타고 다니다보니 유적지에 들러도 안내판에 적힌 유래조차 읽어 볼 새가 없었어요』설악산에 간 경남 울산 Y고교2년 이모군의 말.
대부분의 학교가 경주·설악산 등 원거리여행을 문교부가 책정한 4박5일 이내 기간에 맞추느라 이처럼 무리한 일정을 짜기 예사.
부산 P여고 2년 김모양(17)은 『너무 혼잡해 학교에서 배운 지리·역사를 현장에서 눈으로 다시 익히는 수학여행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차라리 강가에서 야영을 하며 교사·동급생들간의 우정을 나누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