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은 군수 사냥터”…산막이 옛길에 단체장 무용담 넣은 괴산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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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산막이 옛길에 있는 호랑이 굴. 호랑이 굴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산막이 옛길을 만든 임각수 군수가 청년 시절 창을 들고 사냥하러 다녔던 곳임’이라는 글귀가 써있다. [사진 괴산군]

‘산막이 옛길을 만든 임각수 군수가 청년 시절 창을 들고 사냥하러 다녔던 곳임’

충북 괴산군의 대표 관광지인 산막이 옛길에 가면 황당한 안내판이 있다. 산막이 옛길의 명소 중 하나인 호랑이 굴을 소개한 글이다. 이 안내판에는 ‘겨울이면 눈 속에 호랑이 발자국이 남겨져 있어 1968년까지 호랑이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토’라는 소개와 함께 임 군수가 청년시절 사냥 했던 장소라는 부연 설명이 달려있다. 관광객 김모(52)씨는 “군수가 이곳에서 사냥을 했더라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에 군수의 사연을 소개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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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는 산막이 옛길은 연간 150만명이 찾는 충북의 대표 관광지다.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진 괴산군]

이 안내판은 지난 3월 괴산군이 산막이 옛길을 보수하며 설치했다. 당시 한 직원이 임 군수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을 참고해 문구를 만들었고 임 군수의 결재까지 받았다. 실제 임 군수가 쓴 자서전『산막이 옛길에 서서』에는 호랑이 굴 근처에서 “어린 시절 개를 데리고 산토끼·고라니·노루·족제비 같은 작은 짐승들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써 있다. 임 군수가 길이 2m짜리 창을 들고 산막이 옛길에서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 실패한 일화도 소개됐다. 김현용 괴산군 관광팀장은 “산막이 옛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호랑이 굴을 친근감있게 소개하려고 했다”며 “군수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는 산막이 옛길은 연간 150만명이 찾는 충북의 대표 관광지다.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2008년부터 권역 별 농촌 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2011년 개장 첫해에 88만1000명이 몰린 데 이어 이듬해에는 방문객이 130만2000명을 기록했다. 임 군수는 행정자치부 등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2006년 괴산군수에 당선된 이래 무소속으로 내리 3선을 하면서 전국 첫 무소속 3선 군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식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는 혐의로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괴산=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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