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효과, 강력 범죄 31% 급감…교도소는 마약소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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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남부 파라냐케시 교도소 수감자들이 지난 12일 쇠창살에 매달려 바깥에 있는 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전날 이 교도소에서는 수류탄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져 수감자 10명이 숨졌다. [AP=뉴시스]

작전명 ‘그레이하운드’.

경찰·단속국 세부 교도소 급습
마약 88g, 1억원 뭉칫돈 적발
마닐라 인근선 폭발로 10명 사망
총기·수류탄까지 반입해 폭동도

지난 13일 오전, 마약사범들이 수감된 필리핀 세부의 교도소에 필리핀 경찰과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수색 작전의 이름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개 ‘그레이하운드’의 이름을 빌려온 데서 알 수 있듯 비교적 경계가 느슨한 토요일 오전을 틈타 교도소를 급습한 것이다.

단속반원들이 수감자들을 헤치고 교도소 구석구석을 수색하기 시작했지만 단속을 눈치챈 듯 방 안에선 규정을 위반한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이들이 공용세탁실 문을 열자 수감자들의 세탁물을 넣은 큰 공용 세탁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 속엔 88g의 마약과 함께 450만 필리핀 페소(1억683만원)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여러 대의 휴대폰·노트북뿐만 아니라 완전평면 TV까지 있었다.

같은 시각,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교도소에서도 단속이 있었다. 최근 필리핀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펼치면서 마약사범이 넘치자, 이 교도소는 인근 건물까지 별채로 사들여 교도소로 운영하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싸움닭으로 유명한 제리퍼 페리그리노라는 남성 재소자가 사용하던 독방에 단속반원들이 들어섰다. 마약과 마약 흡입 도구, 마약을 달았던 계량기가 발견됐다. 6만440 페소(143만원)의 현금, 6만1000 페소(144만원)의 어음과 함께 신용카드까지 있었다. 여러 대의 휴대전화 너머로 성인용품까지 나왔다.

CNN 필리핀은 “교도소 내 정보원의 제보를 받은 필리핀 당국이 대대적인 교도소 수색에 나섰다. 이 정보원은 ‘교도소가 마약 소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수색 이후 당국은 “해당 교도소의 교도관들도 전부 조사를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 소굴’이란 표현은 단지 세부의 교도소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날 필리핀 남주 다바오 델 노르테 교도소에선 중국 국적 수감자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현지 언론 ABS-CBN이 전했다. 필리핀 수감자 2명이 이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현지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마약을 불법으로 사고 팔다가 붙잡혀 수감 중이었는데, 경찰은 교도소 내 다툼이 살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당국은 지난 11일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 교도소에서 폭발물이 터져 10명이 숨진 뒤 경계 태세를 한층 강화하고 교도소 내부 상황에 주시하고 있다. 이날 내부 폭동을 일으킨 수감자들이 총과 흉기를 비롯해 수류탄까지 갖추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국은 수감자들이 교도관들을 매수해 이런 무기들을 반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세부 교도소의 대대적인 단속은 이런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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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교도소 군기잡기’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약 근절은 그의 최대 공약이자 핵심 정책이기 때문이다.

15일 마틴 안타나르 대통령궁 공보비서관은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범죄, 불법 마약 퇴치 작전을 벌인 결과, 필리핀에서 범죄가 줄어들었다”라며 그간의 성과를 발표했다. 그는 “취임 다음날인 지난 7월 1일부터 한 달간 전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5만817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9.8% 감소했다”며 “특히 살인, 강간, 강도 등 강력 범죄는 1만7105건에서 1만1800건으로 31% 급감했다”고 강조했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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