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 꾸짖은 광복군 김영관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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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건국이란 단어를 세 차례나 사용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건국절 제정 움직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등, 건국절 논란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 박 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의 반(反)역사성과 부당함을 강도높게 역설한 이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광복군 출신의 원로 독립운동가 김영관(92)옹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에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투사다.

김영관 옹은 12일 박 대통령이 광복 71주년을 맞아 원로 애국지사들과 독립 유공자들을 초청한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참석자들을 대표한 인사말에서 작심한 듯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 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이 있는데, 이는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8월 15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 부르자고 주장해 온,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보수 진영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김 옹은 "대한민국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 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이어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며 "우리의 쓰라리고 아팠던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히 말씀드렸다"고 덧붙였다.

김 옹은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8.29 국치일(1910년 한일 합병일)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할 것 등을 건의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일제 강점기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으로, '임시정부 법통'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연결고리를 끊어 사실상 친일세력의 복권을 꾀하는 것이란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박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대한 김 옹의 따가운 일침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오늘은 제 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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