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중국의 얼굴 입체로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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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같은 유교권 국가로서, 그리고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주요 교역국으로서 우리는 비교적 중국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비록 1992년에 수교한 국가지만 수백년 동안 유지해온 끊을 수 없는 문화적.역사적 관계를 감안, 아시아 국가로서 중국을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자부심도 존재한다.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중국 러시(China rush)를 계기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초기 단계에 유행했던 '한강의 기적을 배우자'는 구호는 벌써 옛날 얘기로 사라졌다.

*** 한국에 유리한 단면만 볼 위험

그러나 우리에게 유리하고 편리한 중국만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중국은 한국의 안보, 중장기적인 경제 발전, 그리고 남북 통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나라지만 중국을 관찰하는 잣대는 다른 강대국들을 관찰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일본, 그리고 중국을 비교할 때 미국과 일본의 의도에 관한 한 매우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유독 중국의 의도에 관한 한 매우 관대하고 친한적이라고 의식하는 것 같다.

중국을 이해함에 있어 작금의 개혁개방정책과 전통적인 한.중 관계가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중국의 포괄적인 의도를 읽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중국은 경제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나라지만 동시에 전략적 대국으로서의 꿈을 꾸고 있는 아시아판 수퍼 파워이기도 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체제 모순의 악화로 장기간의 내분이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전환기적 국가이기도 하다.

번영하는 중국,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중국, 통일한국의 향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 그리고 체제불안이 심화될 수 있는 중국 모두가 21세기 중국의 입체적인 얼굴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와 같은 다양한 얼굴들을 지닌 중국을 구석구석 연구하고 다양한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중국이 더 이상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0여년 동안 14개국들과의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은 역사상 최초로 이들 국가와의 관계를 모두 정상화한 외교적 쾌거를 이룩했고 그 결과 해양세력으로서 뻗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통로를 확보했다.

러시아.인도.베트남 등 국가와의 불편한 관계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한 중국은 이제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초점을 돌리고 있다.

대만은 언젠가 모국의 품안으로 귀속될 것이라는 비교적 여유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한반도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중화권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국의 장기적인 대한반도 목표라고 본다. 중국의 활동무대는 더 이상 아시아 대륙이 아닌 환태평양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빛과 그림자에 냉정히 대처를

그러나 이러한 중국형 마스터플랜 (master plan)은 점차적으로 심화하고 있는 체제 모순으로 인해 또 한차례의 심각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유보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

비록 대부분의 중국인이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시아의 용들과 같이 어느 시점에 가서 중국도 본격적인 민주주의 혁명을 겪을 것이며 제2의 천안문 (天安門) 방식으로 민주주의.법치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바람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뜨는 중국과 다양한 내적 도전에 직면할 수 있는 중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한반도에 미치는 정치.경제.군사적, 그리고 사회적 여파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국형 완충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

지난 1천년 동안 한국만큼 중국의 빛과 그림자에 의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아시아 국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다 냉정한 자세로 중국을 바라보는 관찰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李正民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