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 동대문 미아보호실 오병남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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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행락 시즌인 봄이 찾아오면 누구보다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대한적십자사 동대문 봉사회관 미아보호실에서 지난 10년간 길 잃은 어린이들을 내 자식처럼 돌봐온 무료 봉사원 오병남씨 (61) 가 바로 그사람.
『팔자인가 봐요. 버림받거나 집을 뛰쳐나온 아이, 길을 잃어 무서움에 떠는 아이들을 대하면 가슴이 메어져 와요.』 온종일 울면서 거리를 헤맨 어린이들의 얼굴을 씻겨주다 기자와 만난 그는 흘러간 희생의 10년 세월을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돌린다.
회사원·교사등으로 일하는 1남3녀의 성장한 자녀들을 두고 있지만 그는 남편과 사별한 후「부끄럽지 않은 여생을 보내겠다」는 결심아래 76년 자원봉사에 나섰다.
하루 24시간을 어린이와 함께 보내는 오씨에겐 따로 출퇴근 시간이 없다. 새벽5시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미아들의 밥을 짓고, 목욕을 시켜주고, 빨래를 하고….그렇게 눈코 뜰새 없는 하루가 저물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봉사회관을 지킨다.
하루 평균 15명, 5월5일 어린이날엔 무려 1백여명의 미아들이 이곳에 오지만 보통하루만에 다시 엄마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그중 30%는 부모의 학대로 도망친 아이, 버림받은 어린이들로 미아보호실에서 사흘간 부모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시립아동보호소로 인계된다.
친할머니같은 오씨의 헌신적이고 따뜻한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 『할머니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들과 헤어질 때가 오씨에겐 가장 괴로운 순간이다.
『부부싸움이 많은 미아를 생기게해요. 여자들이 조금만 참아주었으면….』 자식들이 이젠 편히 쉬라고 이 일을 만류하지만 체력이 허용하는 한 미아들의 좋은 할미가 되고 싶단다. 그의 올6월 회갑연은 잃었던 아이들을 되찾은 엄마들이 마련하기로 추진되고 있다. 10년 무료봉사에 대한 성대한 보답이 될듯하다.
1961년 서울시 경찰국의 위탁으로 문을 연 대한적십자사 동대문 봉사회관 미아보호실에는 오씨와 한 명의 유급 직원 및 미아신고를 접수, 처리하는 여순경이 함께 일한다. 전화번호는 231 8381.<고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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