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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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민담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동네의 한 아낙네가 생선 장수를 불러 세우고 이 생선 저 생선 살 듯 말 듯 주물렀다. 한참을 그러더니 결국은 흥정도 없이 돌아서고 말았다.
그 아낙네는 부리나케 집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솥의 물에 손을 씻었다.
그날 저녁 밥상을 받은 시아버지는 어느 때 없이 국 맛이 구수한 것에 놀랐다. 까닭을 물었더니 며느리는 생선 만진 손을 솥의 물에 씻은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벌컥 성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 손을 간장 독에다 씻어서 두고두고 우려먹을 일이지, 그래 이렇게 국 한번 끓여 먹고 만다는 말이냐. 소견머리가 그렇게 좁아서 어떻게 큰집 살림을 하겠느냐!』 때마짐 그 집 앞을 지나던 이장이 큰 소리를 듣고 무슨 영문인가 싶어 집안으로 들어가 자초지종 얘기를 들었다.
이번엔 이장이 펄쩍 뛰었다.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며느리를 두둔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장은 한 수 더 놓아 며느리가 마땅히 동네 우물로 가서 그 우물 속에 손을 씻어야 옳다는 것이다.
설마 실화는 아니겠지만, 얘기의 대목 대목에서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알뜰한 살림을 꾸려갔는지 엿볼 수 있다.
요즘 세계 석유가 인하 이후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문득 그 생각이 난다.
가령 교통 요금 인하를 놓고 보자. 서울∼부산 고속버스 요금이 종전보다 1백10원 내렸다. 서울∼부산 비행기 요금도 1천원이 내렸다.
그 1백10원과 1천원이 국민 생활에 어떤 보탬이 될까. 분명히 그 돈은 쌀이 되는 것도, 고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학비에 도움이 되고, 은행 예금이 느는 것도 아니다.
결국 푼돈으로 날아가고 만다. 업자도, 국민도, 그 어느 쪽도 만족하는 일이 아니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요즘 국제 유가 인하 이후 석유의 수입 관세를 t당 3프랑에서 40프랑으로 올렸다. 그 세수 증가분은 철도 보조금으로 지원, 철도 운임을 싸게 한다는 아이디어다.
이것은 두가지 뜻이 있다. 철도 운영 개선과 자동차 배기 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그것이다.
일본도 전기 회사의 경우 경제 협력 기금이라는 특별 계정을 따로 만들어 유가 인하에 따른 이윤을 모아 목돈으로 만드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큰돈이 되면 장차 해외 협력과 같은 큰 일에 쓴다는 것이다.
자원 없는 나라이긴 모두 마찬가지인데, 스위스나 일본은 『우물에서 손을 씻는』 지혜를 발휘하고, 우리는 개울물에 씻어 값없이 흘려 보내고 있다. 하루살이 나라와 백년대계 나라의 차이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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