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5>제 84화 올림픽 반세기<64>김성집|"김선수""김단장"3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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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광복 후 태극기를 휘날리며 처음 감격의 올림피아드 무대에 선지 38년.
일제하 베를린 올림픽 출전의 꿈을 품고 바벨과 씨름하면서 기록 도전에 정열을 쏟아 온 그때로부터 시작하면 꼭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 내 나이 67세가 되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젊은 시절 그때 그대로다. 조금도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김선수」 라는 호칭을 들을 때가 있다. 「김단장」이나 「김촌장」 보다 더 정감이 가는 호칭이다.
런던 올림픽이후 선수로 세 차례, 임원으로 여섯 차례 올림픽에 참가했고 아시안 게임도 빠지지 않고 봐 왔다는 자부심이 이젠 내 큰 자산이 된 느낌이다.
그 동안 가슴 뿌듯하게 기쁘고 감격스런 순간도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애를 태우고 탄식하며 괴로워 했던 나날들도 많았다.
이제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한길 스포츠에 생을 바친 셈이다. 아직도 내가 해야 할일, 나에게 주어진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올림픽 한평생에 보람을 느낀다.
비록 세계 정상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비교적 순탄한 선수생활을 했고, 가정에도 큰 풍파가 없었으며, 경기인으론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훈련단장을 맡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만도 하다.
한때 『김성집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는 얘기가 나온 모양이지만 나는 끝까지 체육인으로 남아 가능한 한 한국 체육의 발전과 후진 양성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춥고 배고픈 가운데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묵묵히 운동에 전념해온 것이 우리의 선수시절이었다.
아무런 댓가가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저 운동 그 자체가 좋았고, 그래서 국위 선양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게된 것은 너무도 기쁜 일이다.
예산 사정으로 애써 유치했던 아시안 게임을 반납했던 사실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올림픽에 참가, 주최국의 텃세등에 눌려 아깝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점등을 상기해 보면 이
양대 행사의 주최는 꿈만 같은 사실이며 신장된 우리 국력이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양대 행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못 마땅해 하는 소리가 간혹 나오고 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우려이긴 하지만 순수한 스포츠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양대 행사만큼 감격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올림픽을 정치·사회 문제와 연관시켜 비판하거나 뒤늦게 이해 득실을 따지는 논쟁도 있는 모양인데, 잘 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일단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수행해 놓고 보는 것이 민족의 역량을 과시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올림픽 반세기』 연재를 마치면서 서울올림픽이 동서 화합의 장으로, 또 우리 민족의 저력과 문화를 떨치는 무대로 꼭 성공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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