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거진M] 21세기 첩보 액션은, 오직 '본'으로 새로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실 사회의 실세를 빼닮은 권력 집단과 정교하게 설계된 첩보 액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제이슨 본의 긴박한 여정까지. ‘본’ 시리즈가 21세기 액션영화의 아이콘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제이슨 본'을 '본' 시리즈답게 만드는 것들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 ‘제이슨 본’을 단서로, ‘본’ 시리즈를 ‘본’ 시리즈답게 만드는 요소들을 추적했다. 첩보 작전 뺨치는 치밀한 제작기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정도면, 가히 장인 수준이다.

기사 이미지

제이슨 본 스틸. 중앙포토


| 고통받고 속죄하는 영웅, 제이슨 본



제이슨 본. 두말할 나위 없는 ‘본’ 시리즈의 핵심이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의 닉네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그와 같이 극비 프로그램으로 양성된 10억 달러 가치의 살인 병기를 일컫는 이름. 20년 전 촉망받던 병사를 이 특별 실험 작전에 끌어들인 자들은 이번 시리즈 다섯 번째 신작에서 세계 곳곳의 권력 집단을 등에 업고 더 막강해졌다. 본에 의해 역추적된 그들의 정체는 국경을 뛰어넘은 거대한 시스템.

이건 1980년대에 나온 로버트 러들럼(1927~2001)의 원작 소설에서 구축된 테마다.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의 시대 의식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들어맞는다는 게 섬뜩하다. 결국 ‘본’ 시리즈는 주인공이 시스템에 감시당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가 찾으려는 게 단지 자신의 진짜 이름일까?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말한다. “본의 정체성 찾기는 도덕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그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살인하도록 의도된 존재인가.” ‘제이슨 본’에서 본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복수심보다 자신이 빚은 비극들에 대한 모종의 속죄 의식. ‘본’ 시리즈를 여느 첩보 액션영화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 스크린에 소환한 시대적 위기의식


기사 이미지

제이슨 본 스틸. 중앙포토

연일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사적인 메시지 내용을 감찰당했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단지 정보화를 넘어, 생활 밀착적인 디지털 환경에서 비밀을 보장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본 아이덴티티’에서는 미국 뉴욕 9·11 테러의 공포와 그로 인한 편집증을,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조국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사실상 전 세계적 범죄를 자행해 온 미국 정부의 만행을 드러낸 ‘본’ 시리즈.

‘제이슨 본’이 파고든 건 전 세계인이 피부로 느끼는 이 벌거벗은 듯한 불안감이다.

‘본’ 시리즈 전작들의 편집증적인 우려들이 NSA(National Security Agency·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 비리 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 등의 폭로로 기정사실화된 상황. “현실에 비하면 영화가 순진했다”고 자성(?)한 제작진은 “투명성과 사생활 침해, 사회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 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사회”(프로듀서 그레고리 굿맨)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본을 뒤쫓는 자들은 민간인 대량 감시뿐 아니라 SNS를 통해 세계 곳곳에 분쟁과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악역의 입을 통해 그럴싸한 자기 논리에 갇힌 자들의 변명을 들어 보는 것도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쏠쏠한 재미다.


| 차량 200대 동원한 라스베이거스 카체이싱 액션


아낌없는 물량 공세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면서도 사실감 넘치는 게 ‘본’ 시리즈 액션의 특징.

기사 이미지

제이슨 본 스틸. 중앙포토

‘제이슨 본’에선 그리스 아테네의 잔혹한 시위 현장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IT 행사장까지, 스케일 큰 액션신이 등장한다. 아테네에서 경찰 오토바이를 빼앗아 탄 본은 추격자들의 자동차를 피해 군중이 운집한 광장, 물대포와 화염병이 날아드는 좁은 골목, 가파른 계단을 내달린다. 안전을 위해 영국 레이싱 챔피언이 몸소 대역에 나섰다.

라스베이거스에선 단 5분의 액션신을 위해 차량 200대가 동원됐다. 엑스트라 차량 150대, 스턴트 차량 50대가 라스베이거스 대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경찰특공대 차량이 육중한 몸체를 드러낸다. 촬영은 평일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진행됐다. 시속 100㎞로 달리는 차들이 서로를 향해 돌진하고, 심지어 차량들을 다른 차선으로 던지는 장면도 있었다.

이 장면만 열다섯 번 넘게 찍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카지노로 돌진하는 장면은, 철거가 예정된 리베라 호텔을 카지노로 꾸며 마음껏 촬영했다. 덩치만 키운 건 아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종이 한 장이나 작게 포장된 설탕 따위로 적을 쓰러뜨리는 본의 대담한 난투극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 실제 사건 현장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


기사 이미지

제이슨 본 스틸. 중앙포토

촬영 현장에서 그린그래스 감독이 가장 중요시한 점은, 이 영화가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극대화하는 것. 이를 위해 그는 현장에서 밀려드는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했다.

예컨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IT 행사 ‘엑소콘’ 심포지움 연설 장면은 촬영 당일 아침에 완전히 새로 썼다. 이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해커들의 연례 행사 ‘데프 콘(DEF CON)’, 정보 안보 행사 ‘블랙 햇(Black Hat)’ 등 실제 라스베이거스 행사장을 누비며 이곳에 참여한 약 170개의 회사 가운데 상당수를 극 중 엑소콘 행사에 섭외했다. 엑소콘 행사장을 채운 회사·고객·상품의 99%가 진짜였다.

시위 장면은 실제 아테네 시위 현장을 모니터하는 한편, 북아일랜드 시위 군중을 통제한 군사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시위 국면은 ①먼지 일으키기, ②경찰 투입, ③주동자 색출 및 군견 투입 등 단계를 나눠 찍었다. 현장감을 더욱 배가하기 위해, 많은 분량이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전 세계를 누비는 본의 여정은 이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

그리스와 미국 워싱턴, 영국 런던, 스페인 테네리페 등지에서 촬영이 진행됐는데, ‘본’ 시리즈를 통틀어 처음 등장하는 CIA 본부 세트는, 실제 CIA 지부를 찍은 사진과 NSA 사무실 등을 참고해 런던에 꾸렸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