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서 마지막 생을 싸우는 예술가|종합예술센터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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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문화예술계의 「사랑방」구실을 해온 서울 원서동 공간사옥이 국내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공간종합예술관」으로 새롭게 단장된다.
이같은 계획은 서울대병원에서 투병중인 공간의 창업주이자 대표인 건축가 김수근씨(55·국민대 조형대학장)의 「병상발의」를 1백50여 사원이 만장일치로 받아들여 구체화됐다.
한때 현대에 매각설까지 나돌던 공간사옥을 회화·조각·판화·공예 등의 종합예술센터로 만드는 것은 김수근씨의 평생의 집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간사는 61년에 공간건축설계사무소, 65년에 월간종합예술지 공간(지령2백23호), 73년에 공간미술관, 77년에 소극장 공간사랑등을 통해 우리문화 예술발전에 기여해왔다.
이같은 일을 주도해온 김수근씨를 병실(서울대법원 12204호)로 찾아가 공간종합예술관마스터플랜과 그의 인생관·예술관등을 들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기운은 전만 못하지만 정신은 말짱해요. 잡념이 없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읍니다』 (중병과의 투쟁으로 몸은 좀 여위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공간종합예술관 계획은?
『지난해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 공능옆에 새 사옥을 마련, 공간건축설계소를 옮기고 공간마당극장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대가 공간건물을 살려 문화사업을 해주었으면 하는 내생각과 그쪽의 계산에 오차가 생겼습니다. 그래 원서동건물을 공간종합예술관으로 탈바꿈, 문화예술의 새로운 터전으로 가꾸어 이 땅에 진정한 문화의 씨앗을 뿌리자는 생각으로 계획한 것이지요.
마침 바로 옆에 있는 볼상 사나운 변전소 건물이 지하로 들어가고 그 자리에 녹지공간이 생기게 되어 금상첨화가 되었습니다. 전문화랑 5개·야외전시장·레스토랑·아트숍·옥외 카페·다목적홀등을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공간은 종합문화센터의 구실을 할 겁니다.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많이 참여하면 명실이 맞는 예술관이 될 것은 분명하지요.』
-건축철학은?
『건축은 조형예술의 근원입니다. 전통과 기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건축가는 오키스트러의 지휘자와 같아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하머니를 얻지 못하지요.
하지만 무엇을 앞세우느냐는 정도의 비중은 불가피합니다. 이를테면 원서동 공간사옥은 전통을,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은 기능을 앞세웠읍니다. 전통과 하이테크를 천칭으로 달아 평형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 공능의 공간건물입니다. 이런 보석 같은 집을 짓자는게 내 생각이지요』
-건축가가 된 동기는?
『경기중2학년때 덕수궁 앞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미군 덕분입니다. 초컬릿도 얻어먹고 영어도 배울 욕심으로 가회동집으로 데리고 갔지요. 「로버트」라는 미군은 스물두살짜리 건축학도 였습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아키텍트(건축가)라는 단어를 배웠지요. 그가 대통령도 집이 있어야 사니 아키텍트는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택한 겁니다. 아키텍트가 되려면 문학·음악·미술을 잘 알아야 한다는 「로버트」의 엄명(?)에 따라 예술공부도 했지요』
김씨는 서울대 건축과 2년때 6·25동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의 악어가죽 트렁크를 판 25만원을 챙겨들고 일본으로 밀항, 동경예술대건축과와 동경대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예대 3학년때 만난 디자인을 공부하던 일본여성(시도도자)을 만나 여자쪽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 일본에서 전격 결혼식을 올렸다.
자유당 말기인 1960년 남산국회의사당 설계공모에 1등 당선, 국내 건축계로 진출했다. 자녀는 1남1여.
-중병으로 누워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많으실줄 압니다. 인생에 대한 후회는 없으신지요?
『역시 인생은 미완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설계한 공간사랑 건물도 천장을 시멘트인채로 그냥 놓아두었지요. 미완성은 다음의 가능성을 기약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일을 하도록 재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킴굿과 「바하」의 음악에는 스케일과 디테일이 공존하고 있지요. 내가 「바하」의 음악을 좋아하는 까닭도 바로 이점 때문입니다. 건축도, 인생도 스케일과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꽹과리를 치면 송아지도 고개를 쳐들고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지요. 유감스럽게도 돼지만 무표정 합니다. 돈 때문에 「문화의 돼지」가 되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지요. 한시대의 문화수준은 결코 빌딩의 높이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의 상징이라는 초가를 헐지만 말고 자연과 멋있게 조화를 이룬 초가지붕의 선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읍니다』
김씨는 자유센터·워커힐 힐탑바·엑스포70 한국관·남서울 대운동장·서울대 안경예술관·문예진훙원 문예회관·마산성당등을 설계했다.
국전심사위원·홍익대교수·한국건축가협회장·세계건축가연맹이사·문화재위원등을 역임했다. 범태평양건축상·보관문화훈장·이탈리아정부 문화공로훈장등을 받았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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