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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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음식물을 섭취할 때 전혀 세균이 없는 완전청정 식품을 먹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식품이 많고 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식중독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세균은 식품과 공존하는 환경에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식중독환자 발생건수만 보아도 해마다 1천 여건에 이른다. 이를 원인별로 보면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것이 약60%를 차지해 가장 많다. 살모넬라균이나 포도상구균, 병원성대장균에 의한 장염, 장염비브리오 등이 바로 이들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음식물에 이러한 세균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불가피한 세균의 단위별 허용치를 두고 그 이상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세균의 허용기준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다른 구실을 붙여 공중식품업소의 청결과 위생을 단속해 왔다.
예를 들면 대장균이 상식적으로 보아도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되면 그것 자체를 문제 삼기 보다는 전체적인 위생상태 불량 등을 이유로 단속하는 일이 간혹 있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식품위생 행정의 부재 속에 살면서 식중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셈이다.
보건사회부가 뒤늦게나마 위생접객업소의 냉면육수와 보리차, 주방의 행주·도마·개숫물 등에 대해 일반세균과 대장균 수의 허용치를 정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 정부가 발족한 이래 거의 40년만에 이제 겨우 이룩한 위생행정의 표본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진한 것은 세균의 허용치를 정하고 오는 15일부터 특별위생검사를 실시한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어떤 처벌을 내린다는 내용이 없다.
전국 각처에 산재해 있는 식품접객영업소는 거의 20만개소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개별적인 감시와 검사업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한단 말인가. 한정된 예산과 인력 및 장비로는 이것이 일부 지역에서의 투망식 단속이나 벌이다 마는 일종의 엄포에 그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최종단계의 음식물에서 세균허용치를 체크하는 방식보다는 음식물 조리과정의 위생시설이나 살균장비를 철저히 갖추고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감시하는 방법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식품위생환경의 정화가 관 주도에 의한 추진과 병행해서 관련 업소가 소속돼 있는 협회나 조합의 책임아래 자율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방법도 강구돼야 한다.
음식물의 위생상태는 어느 한 시점만을 기준 삼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균이란 적당한 온도나 조건아래서는 세균 1개가 7시간만 지나면 2백만이 넘게 급속히 증식한다는 과학적인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따라서 식품원재료의 선택으로부터 조리시설이나 장비의 위생적 관리는 물론 식품의 제조·가공·보존 등에 관해 업자들을 철저히 교육 감독할 필요도 절실하다.
모처럼 마련된 식품관리 기준이 우리의 외식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도록 당국과 업자, 그리고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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