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배려칸 승차 남성 37 → 11%…진화하는 지하철 에티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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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부터 부산지하철에 여성배려칸이 도입됐다. 초기 남성 승차 비율은 평균 37%였다. 지난 18일에는 평균 11%로 떨어졌다. [사진 송봉근 기자]

부산 지하철 운영을 맡은 부산교통공사는 지난달 22일부터 오전 7~9시, 오후 6~8시 출·퇴근 시간에 도시철도 1호선 5번째 객차를 여성배려칸으로 지정해 운영에 들어갔다. 여성배려칸은 앞서 서울·대전에서 남성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여성전용칸과 같다. 이름만 전용칸 대신 배려칸으로 바꾼 것이다.

첫날과 한 달 후, 직접 타보고 비교
출근길 남성 평균 5명, 대부분 노인들
초기 항의하던 분위기와는 달라져
모르고 탔을 때도 이동에 협조적
시민 설문조사 후 운영 여부 결정

여성배려칸 운영 한 달이 됐다. 기자가 25일 오전 출근길에 여성배려칸을 타보고 한 달 전과 비교해봤다.

이날 오전 7시15분 남포동역에서 여성배려칸에 타자 승객 50여 명 가운데 남성 7명이 눈에 띄었다. 남성이 시행 첫날의 20여 명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 7명의 남성 가운데 60대로 보이는 4명은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다. 이들 60대는 여성배려칸 임을 알리는 스티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 칸이 여성배려칸이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초량역에서 60대 남성 1명이 여성배려칸에 탔지만 그 역시 노약자석에 앉았다. 전동차가 좌천역에 들어서자 앞서 부산역에서 탄 20대 남성 1명은 여성배려칸인 것을 확인하고는 옆 칸으로 옮겼다.

다시 범내골역에서 타 본 전동차의 여성배려칸에는 남성이 3명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60대로 보이는 2명은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다. 여성배려칸에 청·장년 보다는 60대 이상 노인이 많이 타는 것이다.

범내골 역의 질서유지 요원은 “최근에는 하루 평균 3명 정도의 남성이 여성배려칸에 타는 것 같다”며 “주로 시간에 쫓겨 여성배려칸인지 확인을 못 하고 탄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남성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 잘 따라준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들이 질서유지 요원에게 여성배려칸 운영을 항의하던 한 달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전동차를 기다리던 김모(57·여)씨는 “예상보다는 여성배려칸이 잘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부산교통공사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조사결과 도입 초기 남성 승차 비율은 평균 37%였으나 한 달 가까이 된 지난 18일에는 평균 11%로 떨어졌다. 전동차 한 칸에 50여 명의 승객이 탄다면 여성이 45명, 남성이 5명 정도라는 의미다.

또 남성 비율은 퇴근 시간(15%)이 아침 출근시간(8%)보다 2배가량 높았다. 남성 회사원들이 일시에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여성배려칸에 타는 남성의 상당수는 노약자석에 앉아야 하는 노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의 협조와 배려 덕분에 여성배려칸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는 오는 9월 21일까지 3개월간 시범운영하고 시민 설문조사를 벌여 여성배려칸의 계속 운영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윤상우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남성 승객들이 최근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완전 정착을 위해 남성 승객의 공감대가 더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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