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에 이상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돈의 흐름이 예전과는 다르다.
금융기관에는 유례없이 풍성한 돈이 쌓여 「거액예금 사절」이 나오는 판에 회사내용이 좋지 않은 몇몇 기업들은 여기저기서 돈을 회수해 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
또 비교적 내용이 좋은 기업들은 요즘처럼 돈이 풍족할 때 싼 자금을 꾸어 비싼 돈을 갚아버리는데 열을 올리고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요즘 자금시장은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물어낸 돈 ▲정부의 자극책에도 불구, 살아나지 않는 투자 마인드 ▲금리인하 등을 고려한 투자가들의 장기고금리 확정부이자상품 선호 등이 서로 얽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증권·보험·투신 등 이른바 제2금융권의 거액예금 기피다.
이자가 비교적 싼 은행예금이 유례없이 넉넉해 기업들이 비싼 자금을 꺼리는데다 부동산투자규제나 유가증권의 물량부족 등으로 모인 자금을 소화할 수가 없어 아예 거액예금은 받지 않겠다고 사절하고 있다.
굴릴데가 없는 판에 비싼 이자를 지급하고 무조건 받아 쌓아 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단자·보험 등은 건설·해운 등의 부실기업채권에 대해서는 조기회수에 나서 대조적이다.
이는 조감법 등으로 부실기업정리가 조만간 본격화 될 경우 대출자금이 상당기간 거치 등의 형식으로 제대로 이자도 못 받고 묶일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지난 연말부터 부쩍 성행하고 있다.
자금수요가 엇갈리기는 은행도 마찬가지인데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이자도 못 받으면서 정책적으로 어쩔 수 없이 계속하면서도 가계금전신탁을 포함한 신탁자금 등 비싼 이자를 주고 조성해둔 자금들을 빌어가는 기업이 없어 일종의 역 마진 현상까지 일어날 판이다.
돈이 아쉬운 중소기업 등에 떠 안기기도 하고는 있지만 절대금액 자체가 많지 않고 더우기 올해는 중소기업 육성이 절대 명제처럼 돼 떠 안기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조성된 자금이 나가지 않자 비교적 이율이 높은 채권투자를 늘리려고 해도 물량부족으로 여간 어렵지 않다.
채권을 발행하는 정부나 국책은행·기업들도 금리가 내릴지 모르는 판에 장기로 비싼 돈을 끌어쓰기를 꺼려 물량부족은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