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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아코디언 거장 심성락의 다시 부는 바람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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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락’이란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게 지난 4월이었다.
‘Right Now Music 2016’공연 보도자료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전설이 되어가는 마에스트로!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으로 소개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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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랬기에 무심하게 지나쳤다.

5월 다시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의 <다시 부는 바람의 노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였다.

보도자료는 심선생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자, 패티킴,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등 국내음악가 열 중 아홉과 함께 음반작업을 한 아코디언의 거장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음반뿐만 아니라 <인어공주>,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 등의 수많은 영화음악에도 참여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했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된 연주곡만 7000여 곡, 음반은 1000여 장에 달할 정도니 여든 인생 그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시절 청와대 공식행사에서 연주를 했기에 ‘대통령의 악사’로 불렸다고 했다.

2009년 발매된 그의 앨범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두고 “평생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소리” 라고 했다는 작곡가 김형석의 평도 있었다.

구체적인 그의 이력과 삶에 적잖이 놀랐다.
그런데 가슴 철렁하는 사연이 보도자료 마지막 부분에 이어져 있었다.
4월의 공연을 앞두고 갑작스런 화재로 심선생의 아코디언이 불타버렸다는 것이었다.
첨부된 2009년 EBS공연 영상엔 그의 연주와 함께 이런 자막이 흘렀다.
‘바람이 들어오면 숨을 들이쉬고,
바람이 나가면 숨을 내쉬는 주름상자에 숨결을 불어넣는 왼손,
심장 가까이 숨 쉬는 주름상자를 안고 함께 호흡하는 남자’
화재로 타버린 것은 그가 사반세기 동안 심장 가까이 안고 함께 호흡했던 바로 그 숨 쉬는 주름상자였다.
불타버린 그의 악기 사진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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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성락’은 사실 예명이다.
‘소리로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라’는 의미였다.
이름대로 그렇게 산 연주가의 삶이었다..

이런 노악사에게 새 악기를 마련해주려 소셜펀딩에 나섰다는 게 보도자료의 마지막 내용이었다.
그 자료를 보낸 이가 공연기획과 LP음반 제작사인 페이퍼 크리에이티브의 최성철 대표였다.
그와 전화 통화를 했다.
“선생님이 화재로 아코디언은 물론 모든 것을 잃으셨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힘을 모아 아코디언을 헌정하고 선생님이 그 힘으로 다시 바람의 연주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셜펀딩을 시작했습니다. 후원자 분들의 이름을 악기 벨트에 새겨 넣을 겁니다. 그리고 한정판 LP를 만들어 후원자에게 선물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후원자와 함께하는 감사의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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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표는 앞으로 40일간 소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악기 가격만 2천만원이 넘을 정도라 쉽지 않겠지만 한번 해보겠노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심성락선생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최대표가 사진촬영을 위해 아코디언을 대여해서 오겠다고 했다.
사진촬영 준비까지 세심히 챙기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악기보다 미리 도착한 심선생이 한사코 악기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남의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해요. 이 양반한테 신세지고 여러 사람한테 신세지는 게 달갑지만은 않아요. 평생 신세 안 지고 살려 했는데…”
악기를 돌려보낸 건 팔순 노악사의 면구함과 자존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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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코 악기를 돌려보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대신 손을 보여달라고 심선생에게 부탁했다.
평생 연주해온 손과 함께 사진을 찍을 요량이었다.
양손을 펼친 노악사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이상했다.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바깥쪽으로 밀려나 있는 듯했다.
하필 건반을 짚는 손가락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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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손가락이 제 눈엔 좀 특이하게 보입니다.”
“어릴 적 사고로 절단되었소. 그래서 네 손가락으로 건반을 짚죠. 수없이 연습해서 나만의 운지법을 터득했지만 틀려먹은 거요. 원래 운지법을 벗어났으니까요. 콩쿠르라도 나가면 영락없이 떨어지겠죠. 정식이 아니니까.”
당신 스스로 ‘틀려먹은 운지법’이라 했건만 내게는 남다른 의미로 들렸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바람의 소리’를 만든 이유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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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인터뷰가 신문에 게재된 후 소셜펀딩의 진행상황을 최대표가 시시때때로 알려왔다.

-50%를 넘어서 ‘절반의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5월27일)
-어느덧 300번째 후원자이군요. (6월1일)
-기적을 만들어 주세요! 이제 20% 남았습니다. (6월 12일)
-모두에게 정말 감사 드립니다. 100% 달성! 이 기쁜 소식을 선생님께 전할 수 있어 먹먹합니다. (6월 22일)

소셜펀딩 33일 만이었다.
후원자는 560명이었다.
이날 100% 달성을 알리는 최대표의 카카오톡 이름 앞에 새로운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같이’의 ‘가치’>란 수식어였다.

이번 주 토요일(30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심성락 선생이 공연이 열린다.
노악사는 후원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주름상자를 품고, 그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연주를 들려줄 것이다.
<심성락 선생의 다시 부는 바람의 노래>는 <‘같이’의 ‘가치’>가 이루어낸 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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