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총리의 정책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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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만제 부총리가 기자 회견에서 밝힌 올해 경제정책의 대강을 보면 큰 줄거리에서 대체로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강조점은 실업 증가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점, 그것을 위해서는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기술 집약형 또는 모험 기업 창업을 특별 지원하겠다는 점, 대기업 여신 규제도 계속 완화하겠다는 점 등 이다.
이 같은 중점 과제의 제시와 대응 방안은 당면한 실업 문제와 민간 투자 침체의 극복을 위해 이미 각계에서 여러 형태로 의견을 개진한바 있었다. 우선 우리는 정부가 실업 문제의 접근 방식에서 종래의 고식적인 재정 사업 중심의 고용 증대책에서 진일보한 점을 평가하고 싶다.
현재의 실업 형태는 경기 부진에 따른 일시적·과도적 실업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와 경쟁력, 기술 진화에 따른 구조적 측면이 더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때문에 일시적 고용 증대 효과에 그치는 재정 중심보다는 더 원칙적인 산업 구조의 조정과 기술 지향형 신투자로 대응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선택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댐·간척 등 대형 재정 사업을 전면 유보하고 한정된 재원을 제조업이나 고용 효과가 큰 중소기업 투자에 활용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 본다. 다만 우리는 이 같은 대형 정부 사업의 전면 중단이 불요불급한 토목공사의 유보를 넘어 긴요한 농업 투자나 사회 간접 시설까지 획일적으로 억제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주석을 달고 싶다.
제조업·중소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지원 대책은 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나 문제는 자금 지원만이 아니라 민간 투자를 현실적으로 고무하는 환경이나 여건의 마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투자 전망이나 수익성에 비해 금리와 투자비용이 높거나 경영 외적 간섭과 부담이 개선 또는 경감되지 않는 한 자금 지원이 는다고 곧 투자가 뒤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지난해의 경험이 여실히 말해 준다.
투자 활성화가 당면 과제라면 당연히 가용 재원의 문제가 부각된다.
김 부총리는 통화 운용의 신축성을 내걸고 통화 지표상의 안정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지표상의 안정이나 긴축에 너무 매달리면 성장의 잠재력을 해칠 우려가 있고 투자 활성화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통화 운용의 요체는 신축성과 안전성, 그리고 효율성을 언제나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점이다. 신축성을 갖되 언제나 효율과 안정을 염두에 두는 신중한 운용을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통화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당면 과제인 부실 산업 정리는 산업의 효율화와 경쟁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건너야 할 강이다. 경제의 크나큰 누출구가 되고 있는 이들 부실 산업은 빠른 시일 안에 단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섬유·합판 등 고용 문제와 연관된 기반 산업은 경쟁력의 쇄신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시설 개체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경공업을 획일적으로 사양시 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실은 빨리 정리하되 산업 구조 조정 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판을 짜나 간다는 자세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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