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부인은 표절쟁이?…미셸 오바마 연설 베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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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와 부인 멜라니아(오른쪽)

도널드 트럼프 대관식 첫날은 '혼란'과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피날레는 역시 '패밀리'였다.

먼저 160년 전통의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사상 처음으로 대선후보가 첫날부터 등장한 것이 파격이었다. 대선 후보는 관례적으로 마지막날(4일째)에 등단해 후보 수락연설을 해왔다. 최초의 '아웃사이더 후보'답게 트럼프는 그 룰을 깼다.

18일(현지시간) 밤 10시 20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농구장 '퀴큰론스 아레나'에 록그룹 '퀸'의 대표곡 '위 아 더 챔피언'이 울려퍼지며 안개가 피어오르는 무대 위로 은빛 실루엣 커튼이 열리자 3만 관중이 함성을 질렀다. 낮 12시 5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최고조에 달했다. 트럼프의 동작은 전에 없이 절제됐고 목소리 톤도 낮았다.

찬조연사로 등단한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46)는 그동안의 딱딱하고 느릿한 말투에서 전혀 딴 사람이 돼 있었다. 평소와 달리 노출이 없는 흰색 원피스를 입었다. CNN은 "전문가와 5~6주간 맹훈련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 대회를 참관한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소장은 "억양과 톤까지 적절히 조절하며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고 평했다.

그는 연설에서 "남편의 친절은 항상 눈에 띄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아볼 수 있다"며 "그 친절은 내가 처음부터 그와 사랑에 빠진 이유"라고 남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멜라니아는 이어 "난 2006년 7월 28일 자랑스러운 미국의 시민이 됐으며(슬로베니아 태생)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라며 "만약 내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 봉사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면 그 멋진 특권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것"이라 말하자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당대회 첫날의 승자는 단연 멜라니아"라고 평했다. CNN은 "'100% 순수함'은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나"고 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자마자 반전이 일어났다. 이날 연설이 2008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에 찬조연설에 나섰던 미셸 오바마의 것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멜라니아 연설 중 "(제 부모님은) '인생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 네 말은 곧 네 굴레(bond)이니 네가 한 말을 행하고 약속을 지켜라. 사람들을 존중하라'는 가치를 심어줬다"고 말한 부분은 미셸의 문장과 단어 한 두개 빼고는 같다. 다른 두 문장도 유사했다. 문제가 커지자 트럼프 캠프는 19일 새벽 성명을 발표하고 "이민자 출신인 멜라니아의 삶의 경험과 미국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며 표절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에 앞서 오후 4시쯤에는 '반 트럼프' 진영의 버지니아주, 유타주 대의원들이 요구한 전당대회 진행 룰 변경이 '주류 트럼프'측에 의해 좌절되자 양측이 맞고함을 지르며 대치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콜로라도주 대의원들은 아예 대회장을 떠나버렸고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했던 버지니아주 전 법무장관은 출입증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퇴장하기도 했다.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Make America Safe Again)'란 테마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선 2012년 리비아 무장집단의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 당시 사망한 미 국무부 직원의 모친 패트 스미스가 나와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는 감옥에 가야 한다"고 비난하는 등 20여 명의 연사가 일제히 민주당 클린턴 후보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가 중량감에서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날 VIP석에는 밥 돌 96년 대선후보 밥 돌(93)과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펜스 부부만이 자리를 지켰을 뿐 나머지 자리는 트럼프 차남 에릭과 차녀 티파니 등이 메웠다. 그나마 트럼프 패밀리는 멜라니아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떠버렸다. 결국 텅 빈 VIP석에서 펜스 부통령후보 부부만 어색하게 자리를 지켰다. 트럼프 캠프 내 '패밀리 파워'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장녀 이방카가 찬조연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클리블랜드(오하이오주)=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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