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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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가 미국으로부터 유럽공항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은 평소 과격하고 독특한 대외노선뿐아니라 국내사정악화에 따라 국민의 관심을 의부로 돌리려 한다는 혐의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이번 테러사건의 관련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그동안 자신의 정치노선에 의해 과격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공공연히 지원해온게 사실이다.
또 최근에는 ▲국민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유수입의 감소▲인접 차드내전 개입의 후유증에 따른 재정적 곤란 ▲장기독재에 항거하는 반대파의 활동등이 국내불안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때문에 「카다피」는 테러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비난받고 긴장이 고조되면 이를 기회로 국내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리비아밖에서는 큰 호응을 받지못하는 그의 독특한 정치철학인 「카다피즘」 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있다.
『우리시대의 가장 위험스런 인물』(「페레슨 이스라엘 수상)등의 혹평을 받고있는 「카다피」이지만 그는 국내에서는 철저한 검약생활, 카리스마적인 지도력등으로 오랫동안 국민적 지지를 얻고있다.
69년 22살때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그동안 반제국주의, 범아랍주의(나세리즘) 반시오니즘등을 내세우고 특유의 과격한 정치노선으로 주목을 받아봤다.
「카다피」는 집권이후 스스로 고 「나세르」 이집트대통령의 후계자로 자처하며 서구문명의 때가 묻지않은 순수한 회교율법에 의한 범아랍국가 건설을 시도해왔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원대한 이상에 장애가 되는 요소는 어떤 수단·방법으로든 제거되어야한다는 시험을 보였다. 그 가장 큰 장애가 이스라엘임은 물론이다.
반시오니즘의 철저한 신봉자인 「카다피」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뿐아니라 미적지근한 온건노선의 아랍국가와 반목하는것은 이때문이다.
그래서 아랍세계의 강경론자는 리비아에 모여들게 마련이고 리비아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도한다.
아랍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이 있을때마다 리비아가 배후로 지목되는것은 이런 배경때문이다.
대미관계는 오랫동안 긴장상태를 유지해오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 더욱 악화됐다. 81년 지중해의 시르테만에서의 도발을 이유로 미해군 제트기들이 리비아 전투기 2대를 격추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이듬해 「레이건」 행정부는 리비아에 대한 군수품판매와 리비아산 석유수입을 금지시켰다.
리비아의 반미노선은 자연 소련에 접근시켜 소련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소련제 장거리미사일을 구입, 실전배치하고 있다.
또 리비아 베르데이항을 소련에 군사기지로 제공, 쿠바와 함께 소련세의 아프리카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카다피」의 꿈은 아랍연합국가를 형성, 스스로 맹주가 되는것도 있지만 국토의 90%인 사막을 경작지로 바꾸는 일이다.
이같은 개발의욕은 리비아가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1인부 GNP 8천5백10달러의 아프리카대륙 최대 부강국이라는 점에서 자못 활기차게 전개되고있다.
그러나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든 1백20억달러에 달하는 석유수입을 대부분 무기구입에 쓰고 있는데다 차드내전에 개입, 5천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바람에 국민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 못지않게 정치적 실책에서 더욱 크게 작용하고있다.
대민감시기구인 혁명위원회의 횡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 사이에 반정부 움직임이 일고 지난 84년 「카다피」 관저습격사건등 반대파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렴·검소하고 독특한 자주성 과시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있지만 장기독재의 횡포, 과격한 대외정책에 따른 국내외의 시련이 「카다피」의 앞길을 예측키 어렵게 하는 상황이다. <제정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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