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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찰로 35조…브렉시트 틈타 영국 CPU업체 사들인 손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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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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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사진)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컴퓨터 심장(중앙처리장치·CPU)’를 사들였다. 소프트뱅크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CPU설계회사인 ARM홀딩스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인수대금은 234억 파운드(약35조원)에 이른다. 손정의 회장의 기업 인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블룸버그 통신은 “손정의가 모두 현찰을 주고 사들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ARM, 은퇴 번복한 뒤 첫 M&A
블룸버그 “인공지능으로 확장 가능”

주당 인수 가격은 17파운드다. 손정의는 이달 15일 주가보다 43%나 되는 프리미엄(웃돈)을 주기로 했다. 더욱이 주당 인수가는 ARM의 지난해 주당 순익의 70배 수준이다. 또 세금 납부 전 순이익보다도 50배가 넘는 금액이다.

손정의가 일방적으로 높은 가격을 치르진 않는다. 파운드 가치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탓에 미국 달러와 견줘선 10% 가까이 떨어졌다. 최근 급등한 엔화와 비교해선 20% 넘게 추락한 상태다. 그가 환차익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또 브렉시트가 기업의 영국 탈출보다 인수합병(M&A)을 자극할 수 있다는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ARM은 컴퓨터 심장인 CPU를 설계·생산하는 회사다. 공장을 직접 운영하진 않는다. 프로세서 설계도를 협력업체에 주고 칩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ARM칩은 미국 인텔이 만든 프로세서보다 명령어 구조가 단순하다. 전문가들은 “ARM칩이 인텔이 만든 것보다 열을 적게 내뿜는다”고 설명한다. ARM칩이 모바일 기기에 한결 적합한다는 얘기다. 실제 ARM은 모바일 혁명의 승자로 꼽힌다. 삼성과 애플 등의 스마트폰에 ARM칩이 많이 쓰인다.

그 바람에 ARM은 영국의 전략 산업체로 꼽힌다. 새 영국 총리인 테리사 메이는 “외국 기업의 M&A를 국익 차원에서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를 심사하는 영국 정부의 태도가 깐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론도 있다.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가 브렉시트에도 영국이 투자에 매력적인 곳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메이 총리가 그 점을 노려 두 회사의 M&A를 빨리 승인해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M&A는 손정의 비즈니스 흐름에서도 의미심장한 전환이다. 그는 올 들어 은퇴를 사실상 번복했다. 지난달엔 후계자로 꼽힌 구글 출신 인도계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해고했다. 손정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은퇴를 10년 정도 늦추고 싶다”고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처음 성사시킨 M&A가 ARM 인수다. 이동통신이나 엔터테인먼트, 전자상거래 회사들을 주로 사들인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다.

블룸버그는 “손정의가 ARM을 통해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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