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박물관 뭘 망설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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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30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가 지난 11일 타계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었다. 위안부 관련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 달라는 신청서는 지난 달 8개국 14개 시민단체의 공동명의로 제출됐다. 어렵고 귀한 일이다. 그런데 이 엄중한 숙제를, 우리는 온 나라를 휩쓰는 정치권의 갈등과 더불어 자주 잊어버린다. 일찍이 영국 수상 처칠이,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이 한 가지로 말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수사(修辭)가 무색하다. 위안부의 비극을 감성적 심층에서 환기하던 영화 '귀향(鬼鄕)'도 매스컴의 표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 현상을 대변한다.


아무리 정치판이 널을 뛴다 할지라도, 그 정치 이슈가 전국의 여론을 점령해버리는 사태는 심히 걱정스럽다. 그래서 너나없이 뒷전으로 밀어버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해 볼 참이다. 우선 이 ‘위안부’라는 어휘부터 고쳐야 한다. 특히 ‘종군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정신대(挺身隊) 또한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을 가졌으므로 전혀 옳지 않다. 가장 적합한 명칭은 국제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본군 성 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다. 말은 생각을 드러내는 창(窓)이다. 같은 말은 반복해서 사용하면 그 말이 마침내 주문(呪文)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정부건 아니면 국립국어원이건, 시급히 이 용어의 문제에 대한 광정(匡正)을 시도하는 것이 옳다.


이 문제에 관한 논리적 토론에 있어서 한국적 감성은 상대방 비판에 집중하지만, 그래서는 실질적 성과를 얻기 어렵다. 영화 '귀향'이 이끌어낸 공감대를 돌이켜 보면, 목소리 높은 주장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감동을 촉발하는 문화콘텐트가 답이다. 공지영이 쓴 소설 『도가니』가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와 인권 침해의 상황을 날카롭게 파헤쳤으나,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로 제작된 '도가니'는 전혀 달랐다. 그 영화의 위력에 힘입어 은폐되었던 과거의 사건이 다시 검증되고, 부족한대로 바른 방향의 처결을 볼 수 있었다. 전자매체와 영상문화의 대중전파력이 이성적이고 인격적인 지도력보다 훨씬 강력한 시대에, 이 성 노예 문제를 테마로 한 여러 모양의 콘텐트를 개발하는 것이 옳다.


중국 하얼빈 외곽에 일본군이 중국의 민간인들을 포로로 하여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 의무부대 박물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적관(史蹟館)인데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 전시 시설을 한 번 둘러보면, 당대 역사의 실상이 손에 잡힐 듯 감각되기 때문이다. 이 사례만 참고해도 조속히 일본군 성 노예 박물관을 짓는 것이 좋다.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 문제라면, 민간 차원에서 국민모금으로 추진하면 된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사망자 평화기념관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전시실 어느 한 구석에도 전쟁을 도발한 자국의 잘못은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원폭으로 인한 사상(死傷)과 물질적 피해만 강조할 뿐, 그 내부적 역사 왜곡의 현장에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박물관이 필요한 것이다. 성 노예 문제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에 제기할 연대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가와타 후미코는 재일 한인 할머니의 기록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에서 위안소를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운영했다고 기록했다. 일본에도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있다. 전쟁에서 적군에 학대당한 피해자들의 기구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독일이 나치의 잘못을 지속적으로 사죄하지만, 그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 연대의 역할을 감당할 보다 영향력 있고 전략적인 조직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목전의 과제가 산적한데 눈앞에는 늘 이전투구의 정치 싸움이다. 이 오랜 숙제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역사의 교훈을 온전히 지켜가기 위해 모두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아놓고 보면, 그 참혹함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 실제적 참상을 모르고 객관적 정황에 대한 인도주의적 인식으로 문제 해결을 말하면 당연히 여러 갈래의 의견이 나온다. 박물관을 지어 실상을 체계적으로 전시하는 한편, 소책자·화보·영상자료를 제작하여 관련 인사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린 우호의 외교를 쌓아가는 것은 당면한 과제이고, 역사의 진실을 구명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한일 양국의 국민과 후대들이 역사적 진실을 함께 직시하고 그 바탕 위에서 반성과 화해의 의미를 분명히 한 다음에 협력해 나가야 공고한 관계가 된다.


양국 정부가 협상 타결한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사과를 받아내고 보상을 시행한다는 긍정적 측면보다, 일본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근본적 차원의 부정적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일본 내에서도 반응이 엇갈려 양국 관계의 진전에 대한 평가와 협상 결과에 대한 비난이 대립해 있다. 이 논란들은 성 노예의 역사적 과거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가 광범위하게 알려졌더라면 한층 개선될 수 있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일본군에 끌려간 여성이 많은 줄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그 숫자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이제 500명 정도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그 극한적 고통의 실체에 대해서도 그렇다. 지식으로 인지하는 것과 실상을 감각하는 것은 이해의 온도 차가 매우 크다.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이 배제된 것은 실책이다. 일정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또 미국의 압박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생략된 셈이다. 그러니 일본의 자국 교육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등 다음 단계의 일은 무망해져버렸다. 한국의 여성가족부와 교육부가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을 각 급 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하니, 우선 이 불씨라도 잘 살려야 한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재단이 설립되면 지원을 받겠다는 할머니들이 있는 반면 정부의 ‘12·18합의’에 헌법소원을 낸 할머니들도 있다. 이 서로 다른 두 의견을 성의 있게 조정하여 최소한 피해자들이 두 편으로 갈라지는 사태는 없도록 해야 한다. 그에 대한 효력 있는 처방은 대화와 소통, 정성과 인내일 것이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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