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백자압형향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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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호암갤러리를 몇 번 찾아왔지만 미술의 어느 장르를 보아도 조화가 이뤄지는 전시장이었다. 이번 명기전은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뉴욕 메트로폴리턴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각 나라의 명기들, 그리고 대만 고궁박물관의 중국명기와 파리루브르박물관 공예전시실에 전시된유럽명기들을 눈여겨 보았지만 이번 호암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우리 명품들도 그에 못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그중 나에게 호감을 주는 것은 이『백자압형향로』였다. 비록 몸은 작을 망정 효과적으로 구부러진 목은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부드럽게 흘린 곡선이라 왕희지의 글씨보다 아름다왔다.
거기다 가장 알맞게 잦힌 머리의 각도와 조심스레 발름거려져 맺힌 입가의 미소, 그리고 혀 끝에 맑은 침물이 도는 것이 교태롭다. 그 눈은 어쩌면 동양여인의 실눈에다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향연에 취해 버린 모습이랄까.
전체의 중심이 발끝앞으로 당겨져 마치 환상의 호수에로 유영하듯 멋들어지다. 몸가의 빙렬은 알맞게 가마불을 끈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적당히 바랜 담옥색유약은 옥가루를 빚어 비늘을 입힌 듯한 사실적질감의 황홀경으로 몰아 넣는다. 비록 뚜껑은 없지만 뚜껑구멍으로 흡수되는 공기는 향불을 영원으로 피어 오르게하고 그 웃음과 미소는 끝이 없다. 김형근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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