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과학한국」터전 닦았다|올해 과학계 결산과 새해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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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5년의 우리 과학계는 정부와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조용한 변화를 보였다. 정부는 2000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 분야의 장기전략을 확정했고 국내산업계에서는 2백56KD램의 개발 등 첨단산업제품 개발에의 의지를 펼쳤다. 금년도 과학계를 결산하고 86년을 전망하는 좌담회로 올해를 마무리한다.
<세계 10위권 도전>
-올해는 미흡하나마 과학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관심이 고조된 한해였습니다. 특히 이번에 정부는「2000년을 향한 과학기술 발전 장기계획」을 발표, 올해 과학계의 하이라이트를 받았읍니다.
그러나 과학두뇌의 요람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대덕이전을 둘러싸고 일부 연구원들이 동요하는 등 문제점 또한 없지 않은 한해였습니다.
우선 2000년 계획작성에서 주역을 담당했던 최실장께서 말씀해 주시죠.
최영환실장=과기처에 몸담고 있으므로 우선 정부시책을 중심으로 금년을 되돌아보면 뭐니뭐니해도 각계 전문가 3백명을 동원, 1년 가까이 작업을 해온 2000년 계획부터 말씀드려야 겠군요. 아시다시피 이 계획의 기본목표는 세계10위권의 과학기술국 진입이며 대상부문을 5개군으로 분류하고 부문별 도달목표와 추진전략을 세웠읍니다.
말하자면 80년대 중반까지의 국내과학기술 수준을 결산하고 2000년까지의 과학기술목표와 방향·전략을 수립, 국민에게 제시했다는데 의의가 있읍니다.
박원희부장=연구개발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2000년을 향한 장기계획 발표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연구에 임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데 의의가 있읍니다.
이 기본청사진에 따르는 세부실행 계획을 마련할 때는 과학기술계의 중지를 모아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도록 정부에 건의합니다. 과학기술인들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지표를 삼을 수 있게 충실한 계획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권숙일교수=2000년을 향한 장기계획을 마련하는데 절대로 졸속을 피해야 합니다.
세부계획을 만들 때는 시한에 쫓겨 급하게 계획을 만들지 말고 과학자들이 중지를 모아 우리과학기술의 백년대계를 위해 연구의욕을 북돋을 수 있도록 신중히 세부청사진을 작성하기 바랍니다.
최=이 계획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로 21회의 공청회를 가졌습니다. 이 기본목표에 따라 어떻게 실천계획을 마련하느냐가 목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산업계·학계·연구소 등의 대표로 10개 정도의 중점추진분야별로 추진협의체를 만들어 1개 분야에 2백∼3백명의 전문가를 동원, 협의와 토론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실행계획을 작성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6차 5개년 계획의 예산과 연결, 집행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과학기술을 분야별로 분석, 선진국에 가장 근접한 분야를 우선적으로 중점 추진한다는 전략의 설정은 매우 잘된 것 같습니다. 2000년까지 세계10위권의 과학기술국이 목표라는 등 우리의 도달목표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게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읍니다만….
최=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작업에 따르면 2000년까지 우리나라는 15대 경제주요국·10대 교육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로 돼있는데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과학기술면에서 10위권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구 여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가는데 약2백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만에 어느 정도 공업화를 달성했다고 보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본다면 앞으로 15년안에 10위권의 과학기술 선진국에 도달해야 합니다.
2000년에 GNP의 3%를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인구1만명당 30명의 과학기술인력을 배출한다면 투입·투자면에서 볼 때 세계10위권은 되며 현재의 기술수준에 따르면 반도체·소프트웨어·정밀화학·섬유·자동차 등에서는 최선진국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산출면에서도 이 목표는 달성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기초 과학분야>
-이와같은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는 일견 더딘방법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초연구가 실제산업 현장에 바로 연결되는 시간이 최근들어 무척 빨라졌기 때문이지요.
권=그동안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진했던게 사실이었고 특히 대학에 대한 투자는 너무도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미진하나마 기초과학 활성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 육성에는 ▲연구비 ▲연구인력 ▲연구지원 등 3가지 기본요소가 있는데 2000년 계획을 보면 연구개발비의 20%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겠다는 정부의지를 밝히고 있어 연구비 면에서는 기대가 큽니다. 그동안의 연구비 지원은 문교부의 학술조성비와 과학재단의 일반연구비가 있었는데 올해부터 IBRD(세계은행) 교육차관(1억달러)에 의한 연구비지원이 시작됐고 내년부터 과기처가 특정과제연구비의 10%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도록 결정해 그동안 무관심 속에 소외돼오던 기초과학의 숨통이 트인 한해였습니다.
그동안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학생이 법과나 경제계통, 의대 등으로 몰렸으나 올해는 순수 기초과학부문에 우수학생이 몰릴 것으로 조사됐고 그 덕분에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 물리학과의 커트라인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읍니다.
박=기초과학에 투자가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일 겁니다. 첨단과학의 본질이 기초과학에 바탕을 두고 그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초과학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어요. 반도체다, 생명공학이다 하는 첨단과학도 그 바탕은 물리·생물학 등입니다.
그동안의 우리연구는 어떤 면에서는 일부 모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모방이 벽에 부딪치니까 만시지탄이 있지만 기초과학에 눈을 돌리게 된거죠. 즉 응용연구→목적연구→기초연구 등으로 순서를 거꾸로 오다보니까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거죠.
<KAIST 이전>
-금년 한햇 동안 우리과학계의 또 다른 이벤트는 무엇이었을까요. KAIST의 대덕이전 문제 등으로 연구원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는데….
박=금년은 몇몇 첨단과학분야, 특히 산업계의 일부 전자산업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내놓는 등 많은 성장이 있었던 한해였습니다.
그 다음은 KAIST에 유전공학 센터가 발족되는 등 생명공학의 기반이 구축됐고 신소재분야에서 연구개발의 투자가 시작됐어요.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에 대한 욕구가 커져 민간기업의 KAIST에 대한 개발의뢰가 크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기술능력이 향상돼 중소기업의 기술상담 등이 많이 늘어난 것도 두드러진 변화입니다.
브라질·대만 등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중진국가들이 상호보완적으로 선진국에 공동대처하자는 협력요구가 많은 것도 금년의 특징입니다.
이밖에 KAIST의 재학생수는 1천9백51명이고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이 7백18명인데 내년에는 재학생수가 2천2백35명, 박사과정은 9백27명으로 늘리는 등 박사과정 중심으로 인재를 양성할 계획입니다.
崔=정부는 대덕지구를 과학교육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기본방침 아래 88년까지 KAIST를 이전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원들이 마음놓고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시설, 주거·교육시설 등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그래서 이 계획의 하나로 연구원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과기원부설 중·고교를 세우거나 사립학교를 설립, 1류학교로 육성하는 2가지 안을 경제기획원과 협의중입니다. 일방적인 무모한 이전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박=KAIST에 근무하고 있는 많은 식구들의 생활터전을 옮기는 일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더 좋은 여건에서 능률적인 연구를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이전해야 하겠읍니다.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참석자>
◇권숙일(서울대교수·물리학)
◇박원희(한국과학기술원 연구조정부장)
◇최영환(과기처 기술정책실장)
(가나다순)
사회=김광섭 과학부차장
정리=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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