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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총리의 신의 한수?…탈퇴파에 EU 탈퇴 협상 맡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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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요체엔 인사권이 있다. 13일(현지시간) 76번째이자 여성으로 사상 두 번째로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된 테리사 메이가 보여준 바다.

그는 총리로서 첫 연설에서 “국민투표는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한 투표였지만 진지한 변화를 위한 투표기도 했다”며 “특혜받은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 “보수당은 완전히, 전적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을 위한 당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노동당 대표 연설로도 손색 없을 만한 연설이란 평이 나왔다. 그는 연합왕국으로서 영국을 지키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리곤 두 시간도 안 돼 주요 장관직을 발표했다. 일부 조각(組閣)명단이다. '메이 시대'를 알리는 내용이다. 예상 가능한 인사도 있었지만 “급진적”(파이낸셜타임스)이랄 만한 인선도 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시대와의 절연을 의미하는 대목도 있었다.

우선 예상대로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을 재무 장관으로 기용했다. 빈틈없는 일처리로 ‘스프레드시트 필’로 불리는 인물이다. 기업인 출신으로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와도 가까워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해먼드가 시장주의자에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편이라 긴축 기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메이와 호흡이 맞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긴 하다.

2014년부터 국방 장관으로 일한 마이클 팰런은 유임됐다. 메이가 총리가 되면서 빈 자리인 내무 장관엔 여성인 앰버 러드 에너지 장관이 기용됐다.

대표적인 깜짝 인사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이끈 활약으로 총리 직전까지 갔다가 옥스퍼드대 동창인 마이클 고브의 ‘배반’으로 주저 앉았던 이다. 메이와는 여러 차례 공개 충돌했을 정도로 껄끄러운 사이다. 그럼에도 브렉시터로서 존슨의 위상 때문에 내각에 기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외무장관까진 아니었다.

사실 존슨은 외국 지도자들을 향해 비외교적이랄만한 비난을 하곤 했다. 유럽연합을 히틀러의 제3제국에 비유했는가 하면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을 두곤 “부분적으론 케냐인”이라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도 “정신병원의 가학성 간호사처럼 염색한 금발 머리에 삐죽거리는 입, 차가운 눈빛을 가졌다”고 했다. 자유민주당 대표인 팀 패런이 “만나는 사람마다 사과해야해 제 일을 못할 것”이라고 꼬집을 정도다.

그러나 여러 수를 내다본 대범한 시도란 해석도 적지 않다. 일단 ‘잠재적 라이벌’을 가까이 두는 방식이어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쟁자였던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한 것과 유사하다. 상대적으로 친EU적일 외교관들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메이는 이번에 브렉시트를 전담할 부서를 신설하곤 장관직엔 오랜 EU 회의론자인 데이비드 데이비스를 기용했다. 역시 EU 탈퇴파인 리엄 폭스를 무역장관으로 기용했다. 브렉시터들에게 브렉시트를 맡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존슨이 과거 외무 장관들보단 역할 공간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이들을 두고 "돌아온 남자들"이라고들 말한다. 존슨이 한때 문화 쪽 대변인을 하다 추문에 휩싸여 물러났고 데이비스는 2005년 보수당 경선에서 캐머런에게 패하면서 2선 후퇴했던 일 때문이다. 폭스도 2011년 로비스트 친구와의 관계가 논란이 돼 장관직을 내놓았었다. 또 이들이 상대적으로 시장주의자들이란 점에서 "메이의 말은 중도를 향하는데 인사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디언)는 평가도 있다.

반면 캐머런 전 총리와 2인3각으로 10년 가까이 보수당을 이끌어온 조지 오스본 전 재무장관은 해임됐다. 한때 외무 장관으로 옮길 것이란 소문이 돌았으나 메이가 직접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재정 기조를 두고 종종 충돌했었다. 오스본은 트위터에 “그간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앞서 캐머런 전 총리는 ‘총리 질문(PMQ)을 통해 동료 의원들과 국민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로선 182번째 PMQ였다. 그 자리에서 5500개 질문을 받고 답하는데만 92시간을 소요했다고 한다. 농담과 덕담, 박수가 오가는 속에 그는 “이곳의 고함소리가 그리울 것”이란 말을 남겼다.

이후엔 다우닝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는 “나의 모든 결정이 옳았던 건 아니다”라며 “하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는 더 강해졌다고 믿는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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