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춤추는 상고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신간 '춤추는 상고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공부한 한국의 젊은 학자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쓴 인류학 보고서다. 다소 생소한 단어인 '상고마'는 남아공의 무속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의 무당과 비슷하다. 공식명칭은 '이상고마'. 줄여서 '상고마'라 부른다. 상고마는 격렬한 춤과 꿈 등을 통해 신내림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들의 인생 행로에 대해 점을 쳐주거나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저자 장용규(39.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어과) 교수는 1996년~99년 남아공의 에구투구제니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줄루족 사람들과 함께 살며 현지 조사를 했다. 장 교수는 남아공 더반에 있는 나탈대학교에서 '상고마'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과학.이성.서양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으면, 아프리카는 서양식 근대화가 많이 뒤처진 후진 사회다. 그 중에서도 상고마는 가장 전(前)근대적이고 낙후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기본 명제인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책을 서술해 나간다. 정상과 비정상, 우등과 열등이란 잣대를 문화현상에 적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우선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석화된 아프리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땅으로 아프리카를 그려내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역시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전통과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며 또 희열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낙후됐다고 여겨지는 상고마 사회조차 그 삶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기본적 구조에서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흥미롭다. 상고마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주술사.마법사.퇴마사로 알려져 있는 상고마는 더 이상 과거의 전통적 문화재가 아니다. 저자가 볼 때 '상고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하나의 사업'이다. 핸드폰을 들고 자가용을 끌며 고객을 만나는 오늘의 상고마에게 저자는 더 이상 전통의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

그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또 더 잘 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성공한 상고마는 상업적 언론매체의 광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홍보한다.

서양식 근대화가 활발히 진행 중인 가운데 상고마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대부분 남몰래 상고마를 찾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고마의 수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번성한다.

현재 남아공 상고마 연합회에 공식 등록된 회원은 8만여 명이지만, 실제론 그 보다 두 배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사실을 통해 저자는 "과학과 상고마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 개념"이라면서 "과학과 첨단기술의 이기를 활용하는 상고마를 신비주의의 틀 안에 가두어놓는 것은 문화 폭력"이라고 말한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