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스쿨, 강의실 없이 온라인 토론 수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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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4 면

1 미네르바스쿨의 온라인 수업장면. [유튜브]

2 스탠퍼드대 d스쿨의 강의실. [stanford.edu]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 미네르바스쿨 1학년생 치앙(19)이 노트북으로 ‘복잡계(Complex Systems) 이론’ 수업을 듣는다. 학교에서 개발한 수업용 소프트웨어 ‘액티브 러닝 포럼’을 실행시키자 마크 쿠키스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뜬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의 얼굴도 보인다. 이날 주제는 ‘표현의 자유’다. 토론이 시작되고 치앙이 한동안 말이 없자 쿠키스 교수의 컴퓨터에서 치앙의 화면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액티브 러닝 포럼에서는 토론 참여가 저조한 학생의 화면이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쿠키스 교수가 치앙을 지목해 질문한다. 토론이 끝난 뒤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덮고 가방을 챙겨 기숙사로 돌아간다.


2014년 9월 개교한 미네르바스쿨의 수업 모습이다. 미네르바스쿨은 올린공대, 스탠퍼드대 ‘d스쿨’과 함께 새로운 교육방법을 시도하는 ‘미래대학’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대학은 모두 미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QS의 ‘2016년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50위권에 드는 대학 중 18개가 미국 대학이다. ‘전통대학’의 강자인 미국은 ‘미래대학’에서도 다른 나라를 앞서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네르바스쿨은 4년 학사과정과 4년 학?석사 통합과정을 제공하는 정식 대학교육 기관이다. 미네르바스쿨의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그렇다고 기존 화상강의 같은 일방향이 아니다. 학생들은 교수가 제시한 주제에 대해 미리 공부한 뒤 온라인으로 토론에 참여한다. 지식은 스스로 얻고,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수업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미네르바스쿨에는 강의실과 연구실, 도서관 등을 갖춘 대학캠퍼스가 없다. 현재로선 샌프란시스코의 기숙사가 대학의 유일한 건물이다. 모든 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기숙사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입학 후 2학기 동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고 3학기부터는 독일 베를린으로 옮긴다. 이후 학기마다 런던·부에노스아이레스·벵갈루루·이스탄불 등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다. 내년에는 한국의 서울에도 기숙사를 열 예정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설립자인 벤 넬슨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7개 도시를 선정했다”며 “동아시아에서는 서울만 한 도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 근교 니덤에 있는 올린공대는 2002년에 개교한 학생 수 334명, 교수 38명의 작은 대학교다. 하지만 2016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 대학평가에서 공대 학부 순위 3위를 기록할 만큼 명문대다. 이 대학의 특징은 철저하게 실습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기존 공대에서는 먼저 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하지만 올린공대에서는 1학년 때부터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을 받는다. 먼저 실습을 하고 이론을 배우는 셈이다. 학부과정이지만 디자인과 소비자 중심의 제품 개발을 강조하는 것도 특징이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소비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현실 변화에 맞춘 교육을 위해 5년마다 교육과정을 개편한다. 4학년이 되면 기업의 의뢰를 받아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 ‘스코프(SCOPE)’에 참여한다. 교수와 4~5명의 학생이 팀을 이뤄 1년 동안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스탠퍼드의 d스쿨은 대학원생을 위한 비정규 과정으로 ‘혁신가’를 키워 내는 게 목표다. 전공은 따로 구분하지 않지만 참여하면 학점으로 인정된다. 한 해 600~700명 정도가 수업을 듣는다. d스쿨 교육의 핵심은 ‘디자인 사고’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디자인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감과 시제품 제작을 강조하는 방법론으로 최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전공의 d스쿨 학생들은 문제를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결방법을 도출하고 그것을 제품으로 직접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 전공의 아크샤 코타리는 d스쿨에서 수업과제로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뉴스를 최적화하는 앱인 ‘펄스’를 동료와 함께 개발했다. 이 앱은 2010년 애플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의 칭찬을 받았다. 코타리는 2013년 이 앱을 링크드인에 9000만 달러(약 1043억원)에 파는 대박을 터뜨렸다. 대학 수업이 창업(Startup)과 성공적인 매각(Exit)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용석(미래학 전공)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는 “(앞으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개인적인 학습을 통해 지적 욕구와 직업에 필요한 능력을 충족시킬지도 모른다”며 “직업교육과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만이 대학이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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