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죽음과 함께 뛰어다닌 의사의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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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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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남궁인 지음
문학동네
316쪽, 1만4000원

남궁인(33)씨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죽음과 가까운 과였기에 응급의학을 택했다.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그는 “죽음에 맞서봐야겠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음을 받아내기도, 혹은 놓치기도 해봐야겠다”는 열망의 근원을 찾아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다. ‘날 것의 죽음’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있던 그곳에서 4년을 레지던트로 보낸 뒤, 그는 마주한 죽음의 실체를 잊지 않기 위해 “죽으려 했던 자가 죽음 안에서 뛰어다니는 기록을” 써내려갔다.

“자살자가 쏟아지는 밤이 있다. 성공할 수 있는 방법과 상황을 고집스럽게 택해 자신이 가진 생의 끝을 정해버리는 사람들.” “그런 밤이었다. 악령이라도 씐 것처럼 유난한 밤. 그래서 시신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내 앞에 도착하던 깜깜한 밤.”(127~128쪽)

이 책은 남궁인 씨를 페이스북(www.facebook.com/ihn.namkoong)의 유명 작가로 만든 ‘흉부외과의 진실’ ‘기묘한 진료실’ 등의 글이 바탕이 됐다. 극적 구성과 가공 작업을 거친 38편 글은 르포르타주(기록문학)이면서도 허구가 뒤섞여 있어 단편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만약은 없다는 말: 죽음에 관하여’와 ‘알지 못하는 세계: 삶에 관하여’로 나눈 구성도 김경주 시인의 지적처럼 “이 시대의 중요한 인간극장” 성격을 보여준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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