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림 감정, 100% 확신 못해…작가 의견도 절대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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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언제부턴가 미술품 위작사건이 터지면 언론은 물론 장삼이사 모두가 난리다. 25년 전 천경자의 ‘미인도’ 또는 ‘나비와 여인’은, 작가와 감정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며 틈날 때마다 부활하는 꺼지지 않는 불이 되었다. 미제사건이 하나 더 추가될 기세다. 지난주 경찰에 나가 자신의 그림을 본 이우환도 감정가들이나 경찰이 내린 위작이라는 결론과 달리 진품의견을 내놓으면서 문제는 미궁으로 향하고 있다.

국민·작가 보호하려던 위작 감정
작가가 ‘피의자’ 된 상황 안타까워

사람들은 궁금하고 답답하다. 답은 ‘진’아니면 ‘위’라는 둘 중 하나일 텐데, 전문가나 작가가 왜 결론을 못 내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감정이란 그리 단순하게 칼로 무 베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미술품 감정은 변호사 사무실에 사건을 의뢰하듯 개인 감정사무소에 의뢰하면, 본인을 포함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감정을 실시하고 개인명의의 감정서를 발부한다. 반면 규모가 영세한 국내 미술시장의 경우 대개 감정전문가들이 모여 전원합의체 형식으로 감정을 꾸려나간다. 크게 의견이 갈리지 않는 한 진위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적어도 2~3인이 부정적인 의견을 낸다면 2~3회에 걸쳐 방증자료를 수집하고 소장이력 등을 따져 진위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방증자료로도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경우 감정불능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즉 감정은 ‘진’, ‘위’ 아니면 ‘감정불능’ 세 가지이다.

그런데 이 감정결과에 승복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는 개인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이다. 미술품 감정을 국가공인기관을 설립해 맡기자고 하지만 국가공인 감정기관이라고 해서 개인에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미술에 있어서 가장 권위있는 국가기관이지만, ‘미인도’ 또는 ‘나비와 여인’에 대한 미술관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문제가 되었던 박수근의 ‘빨래터’같은 작품도 법원에서 ‘진품’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도 다수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이는 작가에 대한 예우차원의 말이지 실제 감정에서는 여러 의견 중 하나의 의견으로 취급된다. 그 이유는 작가도 자신의 그림을 못 알아보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화가 카렐 아펠은, 자신의 그림을 위조한 기어르트 얀 얀센의 그림을 자기 그림이라고 자신했다가 두 번이나 망신을 당했다. 국내서는 작고한 원로작가 Y씨가 감정가들의 진품이라 결론 내린 자기 작품을 ‘위작’이라 주장하다가, 법정 공방까지 치렀다. Y씨는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 위작임을 증명하는 과학적 분석결과까지 첨부해서 위작임을 주장했으나, 알고보니 자신의 개인전 도록에 실려 있는 작품이었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진품 결론을 내렸다. 즉 작가도, 과학적인 분석자료도, 감정가도 완벽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술품 감정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따지는 행위고 진위는 그 과정 중 하나이다. 또 진위는 진실에 최대한 가깝게 추정하는 것이지 100% 확언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는 것을 본 제 3자가 있다면 모르지만 사실 ‘신’만이 아는 영역이다. 의심을 하자면 미술관에 걸려있는 모든 그림이 ‘100%진작’이라고 어느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위폐감지기처럼 그림에 갖다 대면 진위를 알려주는 과학기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감정은 과학의 영역너머에 있다. 게다가 결론은 각자의 판단과 믿음에 따라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에 달려있다. 미술품 감정이 어려운 이유다. 감정과 위작근절의 목표는 국민과 작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진품’이라 하고 경찰은 ‘위작’이라 하면서 작가가 위작사건의 ‘피해자’ 아닌 ‘피의자’가 돼버린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준모 미술비평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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