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젊을 땐 반체제 노동운동…15년 전에 저성장 시대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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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충격』과 『제3의 물결』로 20세기 세상을 뒤흔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8세. 그의 서거 소식은 부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세운 컨설팅사 ‘토플러 어소시에이츠(Toffler Associates)’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그는 아내 하이디와 슬하에 딸(캐런) 하나를 두었으나, 캐런은 2000년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삶과 추억 | 앨빈 토플러 1928~2016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등 통해
시대 거대한 흐름 해석할 힌트 제시
DJ정부 대통령 자문관으로도 활동

21세기 세상 속에 토플러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이란 책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가 뉴욕 출신임에도 미국인보다 한국인에게 더 친숙한 까닭은 그의 책들이 한국 에서 꾸준히, 많이 읽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의 자문관으로 활동했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작 『미래의 충격』은 1970년에 나왔다. 세계미래학회가 탄생하고 미래학 전문 저널이 등장하던 때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경제 개발의 붐으로 사회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때 그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점, 그러다 보니 변화의 방향을 정하는 데 논의와 합의를 통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소수의 힘에 좌우된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토플러는 젊었을 때 노동운동에 뛰어든 반체제 투사였다. 그의 부인 하이디도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났다. 둘은 73년 『문화소비자』라는 책부터 늘 공동 집필했는데, 사실 토플러의 첫 책 『미래의 충격』도 하이디가 자료 조사를 해주었다. 하이디는 다양한 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를 받았고 사회변화 연구에 대한 공헌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에게서 메달도 받았다.

토플러는 노동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후 미래운동으로 전환한다. 한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는 노동뿐 아니라 법과 정치 제도, 경제시스템, 문화 등이 결합돼 이를 풀려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연대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미래운동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은 우리에게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도록 힌트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80년에 펴낸 『제3의 물결』에서 우리가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산업화 경제모델은 쇠퇴하며 지식기반 경제, 창조와 혁신이 일상인 사회로 전환돼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면 당장은 불편해도 혁신을 받아들이고, 혁신가를 대우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에 대해 공정하게 보상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가 우리에게 오롯이 남긴 유산도 있다. 토플러가 2001년 김대중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에는 우리 사회가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풍부하다.

예컨대 그는 더 나은 과학기술의 발명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방법론을 세계에 제공해 다른 나라 과학기술자들이 우리의 방법론 덕분에 혁신을 일구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액수의 증가도 중요하지만 연구개발이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하는지 시민들과 논의하고,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결정하는 분석기법의 개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치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듯 “많은 실업자는 단지 기술 변화와 신경제로의 이행으로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다”라며 “불합리한 기업 운영이나 어설픈 경제정책 등이 실업자들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높은 청년실업률,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기업 구조조정, 저성장의 시대에 무엇이 문제인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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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박사

필자의 은사인 하와이대의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는 70년대 토플러와 의기투합해 미국 워싱턴에 대안미래연구소를 세웠고 지금은 후학들이 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토플러 부고 소식에 데이터 교수는 “지적이고, 탐구적이며, 인간적이고, 겸손한 친구를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우리에게 좋은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를 더 이상 만날 수는 없겠다.

굿바이 앨빈, 당신은 우리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어.

Alvin Toffler

● 1928 미국 뉴욕 출생
● 1946 뉴욕대 입학(영문학 전공). 부인 하이디 만남
● 1950 클리블랜드로 이주해 알루미늄 제조공장에서 용접공으로 5년간 일함
● 1960 펜실베이니아 데일리지 워싱턴지국 백악관 담당기자, '포춘'지에 기업·경영 관련 칼럼 기고
●『미래의 충격』(1970),『제3의 물결』(1980),『권력이동』(1990),『부의 미래』(2006),
『 불황을 넘어서』(2009) 등 출판
● 코넬대 초빙교수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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