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가선 '김정일 제거론'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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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에서 '핵이든 인권이든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일을 제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주장이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뿌연 렌즈의 초점이 하나로 모아지듯, '독재자 김정일이 화근(禍根)'이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6일 미 상원 의원회관인 덕슨빌딩 지하 강당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는 김정일 성토장으로 변했다.

공화당의 존 카일 상원의원은 "북한에서 민주화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변하려면 오로지 김정일이 제거됐을 때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오늘 아침 만난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북한의 유일한 목표는 정권 유지'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역시 김정일 한 사람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갖가지 분란이 벌어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카일 의원 같은 현직 상원의원이 특정 국가의 정권 교체를 대놓고 얘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워싱턴에선 이제 이런 발언을 쉽사리 들을 수 있다.

진 커크패트릭 전 대사는 "독재자는 우선 자기 국민부터 괴롭히고, 그 다음 이웃을 괴롭힌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도 그랬고, 지금 북한의 김정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개인적으로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믿을 수 없다"면서 "북한은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야만적인 정권이며 내부의 변화(김정일 제거)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다"고 단언했다.

토론자로 나온 워싱턴 포스트의 앤 애플바움도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북한 정권이 저지르는 인권탄압을 미국은 문제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탈북자인 강철환.안혁.이순옥씨 등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증언했다.

"TV를 보다가 아버지가 김일성 부자를 비난했다고 아들이 선생님한테 신고해 일가족이 수용됐다" "김일성 사진을 제대로 닦지 않았다고 붙잡혀온 사람도 있다"는 등의 증언이 나올 때마다 의원 보좌관.인권단체 인사 등 1백50여명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 상.하원은 최근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신청을 받아주자는 법안이나, 북한에 대한 선전 방송시간을 늘리는 법안 등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법안들을 잇따라 통과시켰다. '이제 더 이상 못참겠다'는 분위기가 미 의회에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 전문가조차 "북한의 협박 레퍼토리에 신물난다는 반응이 적지않다. 북한은 그동안 '벼랑끝 전술'로 적지않은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술이 아니라 근본전략 자체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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