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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g에 24억’…신약 시장 집어삼키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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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 제약업계 4위 푸싱제약은 지난해 국내 바이오벤처 레고캠바이오·제넥신 등에서 800억원 가까이 바이오 신약 개발 기술을 사갔다. 중국 업계 13위인 타스젠도 제넥신에서 1000억원 규모를, 뤄신도 CJ헬스케어에서 1000억원어치 신약 기술을 샀다.

사람산업을 살리자
수천억 들여 국내 기술 사가
글로벌 R&D센터 30개 진출
노바티스·화이자 1조대 투자

국내 바이오벤처도 중국 자본 덕에 온기가 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복제약(제네릭) 판매로 자본을 확보한 중국 제약사들이 한국은 물론 미국 바이오벤처에도 왕성하게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파마(글로벌 거대 제약사)들도 앞다퉈 중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00년대 중반 5곳에 불과했던 글로벌 제약사의 중국 내 연구개발(R&D)센터는 현재 30개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 2일엔 글로벌 시장 1위 노바티스가 상하이에 10억 달러(약 1조1600억원)를 투자해 R&D 캠퍼스를 열었다. 세계 2위 규모인 중국 의약품 시장(1152억 달러·약 133조4600억원)만 보고 하는 투자가 아니다. 매년 박사 3만 명, 이공계 석·박사 250만 명이 배출되는 중국의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한 투자다.

세계 주요 나라들이 바이오제약을 신성장산업으로 꼽고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제약 강국인 미국·스위스가 주도하는 가운데 최근 중국이 맹추격 중이다. 바이오제약은 연간 세계 시장 규모가 1000조원(2014년 기준)으로 자동차(600조원)나 반도체(400조원) 산업보다 크다. 개발에 성공만 하면 황금알을 낳은 바이오제약의 특성 때문이다.

SK케미칼이 7년 전 해외 제약기업에 기술 수출해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통과한 혈우병 치료제는 1g에 24억원(소비자 가격 기준)에 판매되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국은 몇몇 제약사 외엔 ‘선수급’ 회사가 없다. 현재 셀트리온·한미약품·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들의 뒤를 이을 후보군이 두껍지 않다. 벤처에 뛰어드는 석·박사 연구인력이 적고 글로벌 기업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우리의 약점이다.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제약업은 제약사 빼고는 전후방에 생태계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산업의 뿌리가 될 바이오벤처 창업은 2000년 233개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내리막을 달려 2013년엔 2곳에 불과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한국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연구소는 프랑스 사노피가 유일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서 임상시험은 많이 하지만 신약 개발 파트너로 한국 기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생산시설은 한국얀센과 바이엘 공장이 전부다.

약가(藥價) 제도나 세제 면에서 싱가포르·중국 등에 비해 글로벌 기업이 직접투자(FDI)를 할 만큼 매력적이지도 않다.

이에 비해 중국은 빠른 속도로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만들었다. 해외 유학파 출신이 창업한 벤처기업들과 벤처캐피털, 글로벌 기업들이 복제약 중심이던 중국의 산업 체질을 바꿨다. 한미약품의 내성표적 폐암치료 신약(올리타)의 중국 내 판권은 올해 창업 4년차인 자이랩이 1200억원에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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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제2의 한미약품을 꾸준히 배출하기 위해선 바이오 창업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비 창업가들에게 고가의 실험장비를 제공하는 바이오벤처 인큐베이팅 조직이나 연구자들과 손잡고 바이오벤처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보육기관) 등이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 투자가 적은 초기 단계의 바이오벤처에 지원도 늘려야 한다. 활발한 벤처 창업은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은 “바이오 신약은 물론 한국이 강한 정보기술(IT)과 융합한 바이오 헬스케어 서비스 전반에서 창업이 활성화하도록 지원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련·최은경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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