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것도 절제할수 있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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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축구팀이 일본팀을 꺾고 월드컵 본선 티킷을 따낸 것은 요즘 같이 답답할 때 그야말로 일진청풍이다.
홈구장에서 깨끗한 매너로 숙적 일본을 완파한 것, 그 동안의 정성과 노력이 열매를 맺어 그토록 염원하던 월드컵 진출의 꿈을 32년만에 이룬 것 등은 국민적 자신감과 컨센서스를 모으기에 충분한 것이다 .페어플레이와 벅찬 도전의 성취를 확인했기에 승리가 그토록 값지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한국팀도 잘 싸웠지만 일본팀도 훌륭했다. 경기 후 일본 「모리」감독은 『한국의 실력이 한 수 위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서도 잘 싸우기 바란다』고 했다. 정정당당한 한판 승부,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겸손을 보는 것은 정말 흐뭇한 일이다. 뒤끝이 깨끗하다. 이런 것이 국민적 화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온 국민이 기뻐 열광하고 있다. 불황이나 대량감원의 시름도, 정치적·사회적 갈등도 잊을 수 있는 청량제다.
그러나 지나치면 안좋다. 벅찬 도전을 성취해놓고 좋은 결과를 너무 즐기다가 낭패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1차오일 쇼크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서도 너무 자만에 빠져 안심하다가 경제의 기반을 결정적으로 다질 수 있는 좋은 찬스를 놓쳤다.
오늘날 일본경제가 그토록 튼튼한 것도 1차오일쇼크때의 마무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2차 오일쇼크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넘겼지만 뒷마무리가 허술했다.
좀 더 죄고 다질 수 있었는데 실속없이 너무 떠들다가 요즘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가 기적같이 잘 된다고 안팎으로 자랑을 하다보니 안으론 기대를 너무 높였고 밖으론 제2의 일본으로 과잉 경계를 불렀다. 좋은 것을 너무 즐기다 탈을 낸 것이다. 얼마 전 노신영 총리가 미국에 가서 너무 칭찬을 받고는 『한국경제가 소문난만큼 그렇게 좋은게 아니며 사실은 세계 제4위의 빚 많은 나라』라고 애써 해명을 했다한다. 실상보다 낮게 알려지는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나 너무 좋게 알려지는 것도 문제다.
어려운 것은 감추고 좋은 것은 확 대해 즐기려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큰 낭패를 본다.
좋을 때 절제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지난 올림픽때 우리는 사상최초로 금메달 6개를 딴 것을 비롯, 각종 국제 대회에서 눈부신 성적을 올리고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스포츠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어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스포츠로 끝내야 하는 것이며 그것때문에 다른 큰 일을 잊어선 안 된다.
스포츠의 열기와 그로 인해 조성된 컨센서스를 다른 큰 일을 할 수 있는 활력소로 삼아야지 그것에 휩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번 한일전의 벅찬 감격이 월드컵 본선에서 세계의 높은 벽에 부닥쳐 설혹 깨어지더라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의 승부는 그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여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다른 부문과의 형평을 깨며 무리를 해서도 안된다. 있는 실력으로 유감없이 싸워 나오는 결과에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우리는 지금 벅찬 도전을 받고 있다 .국제정치의 미묘한 흐름과 보호주의의 격랑속에 오늘을 지키면서 내일을 설계해야할 중대한 시점이다.
경제적 불황은 우리 생활을 이미 업습하고 있고 정치적 시련도 우리의 지혜와 자제심을 시험할 것이다.
구인광고만 났다하면 몇백 대 1의 치열한 취직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0여년래의 가장 극심한 취업난이 닥친만큼 경제가 어렵다. 세계 경기전망도 무척 불투명해 단시일 내에 좋아질 전망도 희박하다.
운동장의 감격이 깨어남과 동시에 답답한 현실이 눈앞에 닥칠 것이다.
축구승 리가 그런 답답함에 한줄기 청량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치유책은 될 수 없다. 스포츠의 승리가 다 그렇다. 불경기로 인한 답답함은 경제논리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생산 부문에 더 관심을 쏟아 자원과 시간을 그 쪽으로 돌리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윤활유 역할을 해야지 그것 때문에 부담이 되어선 안된다.
스포츠의 승리는 국력의 결정으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6개나 따고 월드컵 본선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그 동안 국민을이 제 할 일을 열심히해 국력을 이만큼이나 키운 덕분일 것이다.
좋은 것에 너무 탐닉해 자원배분을 잘못하거나 제 할 일읕 소홀히하는 우를 극도로 경계해야한다.
남미제국이 눈부신 성장을 하다 스포츠등에 너무 열중해 중도 좌절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 브라질은 월드컵 세번 우승의 위업을 이룩했지만 오늘날의 처지는 어떤가.
축구의 축제는 끝났다. 이젠 모두.마음을 가다듬고 일터로 돌아가 해야할 일에 열심히 매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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